윤석열 사장님께[우보세]

세종=김훈남 기자
2022.04.06 03:22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열린 간사단회의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메모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저희는 혼나지 않았습니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인수위) 업무보고에 들어간 중앙부처 공무원에게 당시 분위기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전날 업무보고를 한 금융위원회가 인수위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는 보도를 빗대 무난히 업무보고를 마쳤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역시 취재진에게 메시지를 보내 "질책은 없었다"고 해명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관가에서 흔히 볼수 있는 풍경이다. 무릇 중앙부처 공무원이라면 5년마다 새 사장님(대통령)을 맞이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정권교체 여부에 따라 정도는 다르더라도 새 사장님을 모시는 일은 매번 어렵긴 마찬가지다. 직전 사장님 시절 나의 성과급을 챙겨주던 알짜배기 업무가 한순간 감춰야 할 오점이 되기도 하고 지난 5년 동안 골칫거리였던 캐비닛 속 숙제가 부서의 최우선 업무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요즘 정부 안팎에선 민간 못지 않은 '빅배스'(Big Bath·직전년도의 부실을 한 회계년도에 씻어내는 일)가 벌어지고 있다.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 정책,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세제를 포함한 부동산 대책 같은 굵직한 정책부터 일회용품 규제와 자가검사키트 무상공급 같은 생활밀착형 정책까지 재평가와 노선 수정이 반복된다. 새 정권 눈치보기가 극에 달한 공직사회의 분위기상 인수위의 평범한 지적도 받는 입장에선 질책이 된다.

정치적 격동기일 때 공직사회가 대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이를 두고 한 공무원은 "인수위 시즌은 영혼없는 공무원이 더욱 영혼이 없어지는 시기"라고 말했다. 당초 '영혼없는 공무원'은 청와대 등 정권의 요구에 무조건 순응하는 공직사회를 비꼴 때 쓰는 표현이었지만 요즘 관가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잘 지키는 공무원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탈색됐다고 한다.

처세술의 측면에서 보면 '무영혼' 전략이 제법 그럴싸하다. 공직사회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사장이 바뀌거나 이직을 하면 무영혼 전략을 취하는 월급쟁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 정권 교체기마다 공직사회의 피바람이 불었던 점을 고려하면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고 맹비난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공직사회 전체가 이런 '무영혼병'에 물 드는 건 우려스럽다. 대한민국 정부의 고객은 대통령이 아닌 국민이다. 매번 대선과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는 정책 뒤엎기와 그에 따른 사회와 시장 혼란은 결국 당사자인 국민들이 감당할 몫이다.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가 바로 공직사회다. 공직사회가 '무영혼' 전략 아래 정책 뒤엎기에 무작정 동참하는 건 또 다른 의미의 배임이다.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큰 형님' 리더십으로 조직 안팎의 신뢰가 두터웠다. 어떤 조직보다 정치에 흔들리기 쉬운 검찰에서 정의로운 수사를 밀어붙이는 추진력과 정권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는 뚝심에 후배들은 물론 선배들까지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리더십이 지금의 당선인을 만든 힘이다. 한 달 뒤 공직사회의 사장님이 될 윤석열 당선인이 그런 '큰 형님' 리더십으로 공직사회의 영혼을 되찾아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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