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전히 붕괴됐어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서 남자주인공이 그동안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한 위험과 그 결과에 대해 던진 말이다. 붕괴는 한 번에 오지 않는다.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온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아니 이미 붕괴 수준으로 가는 느낌이다. 45억년 전에 만들어진 지구는 5차례에 걸쳐 생물체의 대멸종을 겪었다. 2억5000만년 전 고생대 페름기 말에 일어난 3차 대멸종으로 지구상의 생명체 95%가 사라졌고 2억년 전 4차 대멸종으로 생물의 80%가 사라졌다. 6600만년 전 백악기 말 5차 대멸종에선 전체 종의 75%가 사라졌는데 그 직전에 크게 번성한 공룡 등 파충류가 대부분 멸종했다. 이후 신생대로 넘어오면서 종 다양성이 크게 늘었고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는 600만~800만년 전 침팬지와 공동조상에서 분화해 현존하는 동물의 단일종 중 가장 큰 집단이 됐다.
최근 기후변화가 극단으로 치달아 과학자들 사이에서 6차 대멸종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그 원인을 인간이 제공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과거 5차례에 걸친 대멸종의 원인은 급격한 기후변화지만 이를 촉발한 게 화산폭발, 운석충돌 등 자연적인 것이었지만 지금 예상하는 6차 대멸종은 기후변화의 촉발점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사실 멸종이라고 해도 생명체가 모두 죽거나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체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종(種)의 다양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1000가지 종류의 공룡 1억마리가 멸종 후에는 100종류의 공룡 1억마리가 된다는 의미다. 즉, 다양성이 무너진 허약한 생태계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만년 전 지구상 동물의 분포는 99.9%가 야생동물이고 0.1%가 인간과 가축이었는데 지금은 야생동물이 3%에 불과하고 97%가 인간과 가축이다. 이중 인간이 32%고 가축이 65%로 단일 종으로는 인간이 가장 많다.
무엇보다 과거 대멸종에서 보듯이 멸종 직전의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즉 생물체의 양이 가장 많은 종이 멸종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최고의 포식자인 지배종은 당시 환경에 가장 최적화한 생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물일수록 급격한 기후변화에 치명적으로 취약하다. 생물학에서 지배종은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다. 끝없는 바이러스 공격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호모사피엔스는 유일한 인간의 종으로 전세계인의 유전적 차이는 0.1%에 불과하다. 이러한 유전적 획일성은 바이러스에게 아주 매력적인 숙주이다. 한 번만 인간세포에 감염되면 75억명의 숙주가 저절로 확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롭게 등장하는 바이러스는 다양성을 상실한 지배종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게 될 것이다.
지배종인 인간이 이산화탄소로 뜨겁게 달궈놓은 지구, 종의 다양성이 크게 줄고 바이러스 등에 더욱 취약해진 지배종 인간. 이것이 기업이든 정부든, 투자든 정책이든 ESG를 근본부터 다시 봐야 할 이유다. 어쩌면 지구는 호모사피엔스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