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영화 '기생충'을 다시 보는 까닭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2022.09.07 02:03
임대근(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한국영화의 이정표가 됐다. 100년의 역사를 맞은 한국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의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받았으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시각화한다. 반지하와 대저택으로 나뉘는 공간의 이분법은 그런 불평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이다. 반지하에 살던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이 하나둘 신분을 위장해 저택으로 파고드는 상황은 평등과 분배에 대한 강렬한 욕망의 표상이다.

한국영화계와 평론계는 '기생충'의 수상에 환호했다. 세기의 쾌거라는 상찬과 더불어 영화 캐릭터와 스토리텔링을 분석했다. 음악과 미술, 프레임과 미장센이 어떻게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는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기택의 가족이 살던 반지하라는 공간을 정밀하게 해석한 글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기택의 집, 반지하는 거실과 화장실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길 위로 빼꼼히 내민 창문을 향해 취객이 소변을 보고,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화장실 변기 옆에서 신호를 잡고, 비가 오면 쏟아지듯 들이치는 빗물에 침수되는 공간이 바로 반지하다. 대중과 평단은 영화가 현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그럴듯한 반지하의 모습을 만들어냈다며 너나없이 칭찬했다. 정교한 솜씨로 세트를 제작한 미술팀의 수준도 극찬받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물론 영화는 상상의 산물이다. 영화는 때로 아직 현실이 되지 못한 미래를 그린다. 1902년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 '달 세계 여행'은 67년 뒤 아폴로11호의 달 착륙으로 현실이 된 미래를 예견했다. 영화의 어떤 상상은 지금 바로 여기의 현실을 그린다. 반지하와 대저택처럼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비동시적 동시성'의 공간이 곧 상상이자 현실이 된다.

지하는 인간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으로 지하세계에 산다. 반지하는 지하가 아니라고 강변하기 위해 '반' 자를 붙여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 양 변신을 꾀했다. 그러나 기택 가족의 삶이 보여주듯 반지하는 '반죽음'의 공간이다. '보이지 않는 자'라는 뜻의 하데스의 이름처럼 반지하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 듯 가려진 채 외면당했다.

지난달 내린 폭우로 서울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두 자매와 초등학생이 숨졌다. 순식간에 불어난 빗물이 지하로 들이닥치자 손도 쓰지 못했다고 한다. 반지하 창문의 높이는 불과 30㎝였고 그마저 굳센 방범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위에서 쏟아지는 빗물의 폭력과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세 여성의 삶이 죽음으로 내몰렸다.

반지하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라는 외침이 커지고 있다. 반지하에 사람이 살 수 없도록 법제로 금지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서울에만 20만채 넘는 주택의 지하와 반지하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반지하'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오른다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사고가 나자 서울시는 지하와 반지하를 주거목적으로 쓸 수 없도록 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짝 관심이 아니라 일관되고 실현 가능한 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전형성과 세부적 진실성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리얼리즘 예술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기생충'은 빼어난 묘사로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과연 이 영화를 제대로 독해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수상의 환락과 현실감 넘치는 미장센에 빠져 "정말 똑같이 만들었네"라는 방관자의 시선과 거리를 유지한 채 스크린이 곧 우리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지는 않았는가. 홍수와 태풍이 거듭되는 재난의 계절, 반지하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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