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가짜설'을 학술적으로 논박해 뜻하지 않게 이 땅의 김일성주의자에게 영감을 준 1세대 북한학 연구자 서대숙 전 하와이대 교수가 지난달 별세했다. 그는 객관적 북한 연구의 물꼬를 트면서도 주체사상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남·북한 모두에서 환대와 홀대를 동시에 받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사상적 해방공간에서 한 자리 차지한 주사파가 올가을 또 논란이다. 국정감사에서 나온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의 김일성주의 추종자 발언 때문이다. 서 교수의 책을 꺼내 보니 다음 구절이 눈에 띈다. '김일성은 악명 높은 조선 시대 왕들보다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른 통치자였다. 그는 공산당을 이용해 권력을 공고히 했지만 정작 그가 건설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개인 왕국이었고 그가 다스린 사람들은 그의 신민(臣民)에 불과했다.'
나라 밖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계기로 마오쩌둥주의가 재조명받는다. 마오는 중국 유일의 '영수'(領袖)다. 북한식 표현으로 '경애하는 수령님'이다. 동시대를 산 김일성과 마오쩌둥의 인연은 각별하다. 한국전쟁에서 패색이 짙을 때 마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한 김일성은 마오를 '수령'으로 추켜세웠다. 그의 빨치산 경력도 마오의 공산당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주체사상은 1950년대 후반 흐루쇼프의 탈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간 수정주의 논쟁 속에서 그 싹이 텄다.
김일성주의와 마오주의의 공통점은 동전의 양면인 '개인 우상화'와 '권력 사유화'다. 1970년대 중국의 내정간섭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개인숭배의 범위와 규모에서 다른 독재자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마오 역시 만만치 않았다. 두 나라 모두에서 결과는 처참했다. 대표적으로 마오는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김일성은 천리마운동과 3대혁명소조운동으로 자신의 신민을 불평등과 빈곤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시진핑의 3연임 확정으로 중국에서 권력 사유화와 개인 우상화의 그림자가 다시금 길게 드리워진다. 스스로 '인민 영수'라 칭하고 1인 장기 집권체제를 부활한 시진핑의 목표가 마오주의의 부활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가 마오쩌둥과 동격이 되려면 무엇보다 대만 통일을 완성해야 한다. 문제는 대만해협과 한반도의 운명이 지정학과 지경학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다는 점이다.
탈냉전 초기에는 공산주의와 독재에 대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종언'으로 선언하는 등 들뜬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시장 자본주의의 국가 자본주의화, 민주주의의 권위주의화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다. 하지만 김일성주의와 대장동에 발목 잡힌 대한민국 정치에서 새로운 세계사 흐름에 대한 위기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정부가 북한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남북 화해 분위기가 절정이던 2018년 말 어느 매체에 고 서대숙 교수가 한 말이다. 미중 패권경쟁이 절정으로 치닫는 이때 "윤석열정부는 중국에 너무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그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리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