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압사참사로 안타깝게도 외국인 젊은이들도 희생됐는데 그들은 모두 한국을 사랑한 청춘이었다. 한국을 사랑한 그들은 사랑한 탓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셈이다. 정확히는 한국의 대중문화를 사랑했고, 한국에 관한 꿈을 키워온 청춘들이다. 더구나 단지 한국 노래, 드라마, 영화만 좋아하는 철부지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인재들이라 세계적 컨설팅기업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박사과정을 밟거나 교환학생으로 와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다. 각고의 노력과 오랜 소망 끝에 어렵게 한국에 온 친구들이었다. 결코 그들은 유흥에나 빠진 지각없는 청춘이 아니었다. 이태원에 평소 자주 가던 이들은 이날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피했다. 우리 청춘들이 그랬듯이 처음 이태원에 간 외국인이 대부분이었다. 단지 한국의 축제문화가 궁금해서 갔을 뿐이다.
한편 우리는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참사가 한국,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현실을 믿을 수 없어 했다. 따라서 한국인 특유의 평판문화 때문에 외국의 평가에 좌불안석이 됐다. 그동안 K콘텐츠로 한국의 이미지가 매우 좋아진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자유롭고 풍요로운 나라라는 인식을 주게 됐고 한국에 가려는 세계의 젊은이가 많아졌다. 그래서 거꾸로 압사참사 때문에 한국의 현실이 창피하게 느껴졌고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참담한 한국의 현실이 세계에 다 드러났기 때문에 더는 한국을 좋아하지 않게 되리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 콘텐츠에 대한 흥미와 관광위축도 우려하게 됐다. 이런 문화심리가 형성되는 일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이는 한국 콘텐츠와 브랜드가치 형성과정에 대한 철저한 오해에서 비롯한다. 우리 K콘텐츠가 세계 젊은이들에게 주목받은 것은 소통과 개방성 때문이었다. 이것은 우리의 치부나 부끄러움, 모순도 모두 담아내고 형상화한 데서 비롯됐다.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 방의 존재를 통해 빈부격차와 양극화를 드러냈다. 서민이라고 무조건 착하게만 그리지 않았다. 이런 점은 비단 한국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공감대를 얻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도 마찬가지다. 빚에 쪼들리고 생명의 위협까지 당하는 금융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 또한 한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
영화와 드라마만이 아니다. K팝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은 'N.O'라는 곡에서 청춘들이 겪는 입시현실을 적나라하게 다뤘다. 가사에서 정국은 '꿈 없어졌지 숨 쉴 틈도 없이, 학교와 집 아니면 PC방이 다인 쳇바퀴 같은 삶들을 살며 일등을 강요받는 학생…'이라고 했고, 뒤이어 슈가는 '우릴 공부하는 기계로 만든 건 누구? 일등이 아니면 낙오로 구분짓게 만든 건 틀에 가둔 건 어른이란 걸 쉽게 수긍'이라고 했다. 또한 슈가가 '약육강식 아래 친한 친구도 밟고 올라서게 만든 게 누구라 생각해 what?'이라고 했을 때 세계 청춘은 열광했다.
즉, 참사발생이 아닌 그뒤 우리 행동이 세계 청춘의 평가를 좌우한다. K콘텐츠의 미래는 참사 이후 행보에 그 방향이 있다. 압사참사는 진실이 그대로 철저히 드러나야 한다. 비민주국가나 독재국가처럼 이를 은폐하거나 왜곡하면 곤란하다. 그들에게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일 때 한국은 세계 청춘에게 희망과 꿈의 나라가 된다. 또 그 진실은 문화적으로 기록해 기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을 사랑한 세계 청춘이 어떻게 스러져갔는지 진정성 있게 형상화하는 콘텐츠도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K콘텐츠는 물론이고 한국의 브랜드가치 회복은 요원한 일이 된다. 단순히 이미지만 좋게 포장하는 일이 능사가 아닌 점은 스마트 모바일 시대에 세계 청춘은 이미 K콘텐츠를 공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