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언제부터 무대에 올랐을까. 그것은 극장의 역사보다 길다. 무대 위 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8세기쯤 창작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온다. 파트로클로스의 추모경기로 행해지는 고대 그리스 영웅들의 전차경주가 그것이다. 전차경주는 고대 올림픽의 한 종목이었다. 그리스의 문화를 흡수한 고대 로마인들은 '키르쿠스 막시무스'라는 거대한 전차경주장을 만들었다. 몇 번의 증축을 거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시기에는 그 크기가 길이 621m, 너비 130m로 약 15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전차경주는 동로마제국에서 더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다.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동로마제국에서는 연극과 검투 등 극장활동이 금지됐으므로 전차경주에 모든 오락적 에너지가 집중됐다.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에 건축된 '히포드롬'은 당시 시민들의 사회활동과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러나 1204년 십자군의 약탈로 활기를 잃었고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함락당한 후 채석장으로 변했다.
오랫동안 잊힌 무대 위 말은 18세기 후반에 다시 등장했다. 영국의 퇴역 기병장교 필립 애슬리는 자신의 곡예 기마술을 사업화하기 위해 1779년 런던에 '애슬리 원형극장'을 지었다. 3년 후 그의 동료였던 찰스 휴즈가 독립해서 '로열서커스'라는 원형극장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서커스라는 명칭이 다시 쓰였다. 서커스 역사의 초기 80년 간은 곡마술이 주요 레퍼토리였다.
서커스가 아닌 극장 무대에 말이 오른 기록은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파르네제 극장을 그린 기록화에 나타난다. 1889년 뉴욕의 유니언스퀘어 극장에선 경마 장면을 무대에 재현하기 위해 실제 말들이 기수를 태우고 무대 바닥에 설치된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 말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불확실성이 크고 극장적인 방법이 아니기에 현대에 와서는 다양한 창의적 기법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현대 공연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1973년 영국 올드빅 극장의 무대에 올랐다. 연극 '에쿠우스'에 나오는 말이 그것이다. 그 공연의 무대미술가 존 내피어는 철사로 만든 말머리를 타이츠를 입은 배우들에게 씌워 말을 표현했다. 이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무대표현은 아직까지도 전 세계에서 공연되는 거의 모든 '에쿠우스'에서 애용된다.
2007년 또 하나의 말이 전 세계 공연계를 열광시켰다. 영국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워 호스'가 그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핸드스프링 인형극단'이 만든 그 전마는 나무와 철사, 가죽끈으로 얼기설기 만들어졌는데 2명의 인형사가 그 속에 들어가 앞다리와 뒷다리를 담당하고 또 한 명의 인형사가 말 옆에 서서 말머리를 담당한다. 그 세 인형사의 움직임이 훤히 보이지만 무대 위의 그들은 말과 한몸이 되고 어느 순간 그것이 진짜 말로 보이는 극장적인 마법이 일어난다.
우리나라에선 연평균 1450마리의 경주마가 경마장을 떠난다. 퇴역 후 일부는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다. 다시 무대에 오르는 셈이다. 이 중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 출연한 퇴역경주마 '까미'는 촬영 중 계획적으로 넘어뜨려졌다. 와이어에 뒷다리가 걸려 넘어지며 성공적으로 목이 꺾인 까미는 1주일 만에 죽었다. 일회용 소품처럼 부서져 생을 마감한 것이다. 더 많은 퇴역경주마가 도축되거나 안락사당한다.
가까운 미래, 사람을 대신해 로봇이 경주마를 타는 시대, 부품이 잘못 끼워져 감정을 가지게 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가 자신의 경주마 '투데이'를 지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낙마해 부서지면서 시작되는 공연이 있다. 천선란의 소설을 무대화한 뮤지컬 '천 개의 파랑'이다. 2024년 초연돼 화제를 모은 서울예술단의 이 뮤지컬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과연 말은 어떻게 구현될까? 휴머노이드는? 오는 22일부터 국립극장 해오름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