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다시 한번 뉴욕지점장을 하게 된다면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2025.02.27 02:03
반영은 인베스터유나이티드 대표

2018년 어느 날 오전이다. 당시 KDB산업은행 뉴욕지점장으로 근무하던 필자의 사무실 전화벨이 울렸고 수화기 너머로 낯선 미국 중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한 분은 미국인 헤드헌터였는데 당시 뉴욕에 진출한 한국계 은행의 현지법인 한 곳이 법인장을 뽑는다고 적임자 추천을 부탁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헤드헌터가 초면인 내게 전화해서 적임자 추천을 부탁하는 이유는 내게 관심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내가 추천해줄 만한 사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여하튼 연봉수준과 다른 보상시스템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20~30%의 성과급이 있고 기본연봉은 내가 산업은행에서 받는 연봉의 1.5배 정도였다.

며칠 전 뉴욕에서 만나던 블랙록 직원 한 분이 서울로 출장 와서 미팅을 제안했다. 그분과 약속한 장소로 가는 차에서 문득 2018년 헤드헌터의 전화가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지금 내가 다시 뉴욕지점장으로 발령받는다면 무엇을 하고 싶을까.

첫 번째는 뼛속까지 뉴요커가 돼보고 싶다. 멋진 뉴요커가 된다는 것은 인종, 성별, 종교 등에 구애받지 않는 개방적인 사고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면서도 타인들에게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뉴욕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뉴욕 현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 카네기홀, 링컨센터, 브로드웨이, 블루노트 재즈바, 빌리진킹 내셔널테니스센터, 뉴욕양키스와 뉴욕메츠의 야구장, 프로농구 뉴욕닉스의 홈구장인 메디슨스퀘어가든, 타이거 우즈가 US오픈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베스페이지 블랙코스 등 문화, 예술, 체육 관련 세계 최고의 명소들이 있다. 이런 장소들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하면서 뉴욕을 뼈에 새기고 싶다.

두 번째는 미국 사회 경쟁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 내가 처음 미국 땅을 밟은 것은 산업은행 행원 5년차 시절인 1996년 UC버클리 랭귀지스쿨 연수에 참여한 때였다. 6개월의 연수과정 동안 미국인들의 경쟁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너무 궁금해서 미국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인턴이라도 해보려고 비즈니스스쿨 교수님께 미국 회사 인턴 추천을 부탁했으나 아쉽게도 인턴은 못하고 영문 이력서의 첨삭만 열심히 받고 돌아왔다.

우리가 아이들을 미국 대학에 보내는 것이 단순히 영어 때문일까. 아니면 미국의 합리적인 교육시스템 때문일까. 또는 아이비리그에서 생기는 인맥 때문일까. 평균 토플 또는 토익 성적만 오른다면 우리나라도 글로벌 경쟁력이 생길까.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 사회 경쟁력의 본질을 깨우쳐주는 길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뉴욕에 다시 간다면 꼭 하고 싶은 일은 현지 금융기관의 임원으로 일해보는 것이다. 어려운 꿈이지만 그것이 현지화와 미국의 경쟁력 파악 등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꿈을 꾸면서 "나는 과연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미국 금융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두렵고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한다. 하지만 미국 사회가 한국의 직장문화보다 덜 경직적이고 덜 권위적이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인 기대를 하기도 한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AMD의 리사 수,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등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재가 거대 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활약하는 것을 보면 한국보다 개방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날 오전에 내게 전화한 헤드헌터는 내가 그 자리에 관심 있는지 물어보려 했을까. 아니면 정말 처음 통화하는 내게 적임자를 추천해달라고 전화했을까. 안타깝게도 그분의 전화번호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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