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적자생존은 가장 강한 개체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개체가 생존한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에 비해 불리한 신체조건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적응력 덕분이다. 위험과 한계를 극복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은 지능과 도구를 유감없이 사용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역사는 손에 쥔 돌멩이로부터 시작된 도구의 연대기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아마존 밀림에 맨몸으로 던져진다면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하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다. 맹수와 독충 등 곳곳에 도사린 위험 속에서 제 앞가림조차 버거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칼과 지도, 나침반 정도만 있어도 생존확률은 급격히 높아지고 최신 사양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신체적으로 약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할 수 있게 해준 뒷배는 바로 도구다.
자연세계에서 동물들은 각자 생존에 필요한 고유한 신체를 갖고 태어난다. 매의 날카로운 시력은 원거리에서도 먹이를 포착할 수 있게 해주고 사자의 발톱과 이빨은 사냥의 무기가 된다. 기린의 긴 목, 침팬지의 유연한 근육, 올빼미의 예리한 시력, 치타의 빠른 다리, 독수리의 힘센 날개 등은 모두 오랜 진화의 결과물이며 이는 각 종이 자신의 생태적 지위에서 최적화를 이룬, 일종의 생존전략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존전략은 완전히 다르다. 약한 신체적 능력을 타고난 인간은 대신 도구를 만들고 활용했다. 맹수와 싸워 이길 가능성이 희박함을 알기에 인간은 신체 대신 머리와 도구를 사용했다. 날카로운 발톱 대신 돌칼을 갈아 사용했고 빠른 발 대신 바퀴를 발명했으며 기억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자를 만들어 정보를 기록하고 공유했다. 자동차를 타면 치타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고 굴착기와 불도저로 자연의 지형을 필요에 따라 변형하기도 한다. 천체망원경은 우리 시야를 우주로까지 확장했고 현미경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미시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해줬다. 인간의 생존전략은 신체기능의 생물학적 진화가 아니라 외장형 도구를 만들고 업데이트하며 적응하는 방식이었다. 생물학적 진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느리게 진행되지만 도구발전은 한 세대 내에서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군인은 무기를 갖고 전투에 나가고 음악가는 악기를 갖고 연주하고 직장인들은 컴퓨터를 갖고 일하는 등 각자 자신의 도구를 갖고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늘 우리 곁에는 갖가지 도구가 있다. 이렇게 항상 도구를 휴대하고 쉴새 없이 사용하는 동물은 인간 외에는 없다. 또한 인간은 도구의 힘을 빌려 자연계의 위계질서를 재편했다. 때문에 인간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뒤따른다. 인간이 만든 도구의 힘은 종종 자연환경과 다른 생물, 또는 인간 자신에게 큰 위험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제 AI(인공지능)라는 도구의 발명으로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역사적으로 인간이 창조한 대부분 도구는 물리적,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사용법과 판단은 인간 지능에 의존했다. 하지만 AI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도구다. '외장두뇌'라 할 수 있는 AI는 인간의 인지적, 정신적 한계까지도 넘어서려고 한다. AI는 인간이 도구로 한계를 극복해온 오랜 여정의 마지막 장(章)이다. 하지만 이전의 어떤 장보다 복잡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했기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도구 사용은 생존전략을 넘어 인간의 정체성과 인류문명의 일부가 됐다. 일찍이 문명비평가 마셜 매클루언은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도구는 인간을 형성한다"고 했다. 인간과 도구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은 인류 문명발전의 엔진이었다. 인간의 불완전함이 역설적으로 최대 강점이 됐고 외장형 도구발명과 활용으로 인간은 스스로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