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상승의 파고가 소득계층별로 충격을 달리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의식주 물가와 필수 생활물가가 상대적으로 더 뛰면서 저소득층과 서민들 부담이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교란, 기후변화 등에 이어 계엄여파 등에 따른 경기악화 등이 겹치면서 식료품, 에너지가격 등이 크게 올랐다. 작년 12월 계엄 사태 이후 지난 5월까지 최근 6개월간 가격을 올린 중대형 식품·외식업체는 최소 60여곳이 넘는다는 집계마저 있다.
물론 해당 업체들은 원부자재 가격 인상과 수개월간 지속된 고환율 때문에 한계에 다다랐고 제품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고 항변한다. 실제로 대통령까지 나서서 고가(편의점 일부 라면 2000원대)의 가격이 진짜냐고 언급했던 라면의 경우 지난 2023년 6월에도 문제가 된적이 있었다. 당시 경제부총리가 밀가루가격이 내렸는데 직전해에 급격히 올라갔던 라면값은 꼼짝하지 않는다고 언급하고 담합조사 언급까지 나오자 업체들이 라면가격을 5% 안팎 내렸던 것이 대표적이다. 내렸던 가격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거라는 볼멘 소리의 배경이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작년 말 계엄부터 탄핵, 대선까지 정국 혼란 시기를 틈타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음식점, 커피전문점, 치킨집 등을 비롯한 자영업자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빚 때문에, 매출악화 등 다양한 이유로 자영업을 접고 1년간 경제활동을 멈춘 인구는 지난해 월평균 24만여명으로 최근 3년간 최고치였다. 매출 관련 지표(숙박·음식점업 생산지수)가 8분기 연속 하락세일 정도로 벌이가 시원치 않다 보니 지난달 기준 가계대출 연체율(0.34%)과 개인사업자 연체율(0.56%), 중소기업 연체율(0.61%)은 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고민이 컸던 정부는 소비쿠폰 10조3000억원을 발행(국민 1인당 15만 ~ 50만원 지급)해 소비진작을 유도하겠다고 했고 7년 이상 장기연체된 5000만원 이하 채권을 매입해 소각(심사 뒤 채무탕감)하기로 했다. 음식점 등 자영업자들에게 부담이 컸던 배달 관련 비용(중개수수료 포함)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배달의민족 주문액 1만원 이하 중개수수료 면제, 배달비 일부 지원)도 일부 나왔다.
정치와 정부가 물가 안정에 노력하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경로로 닥쳐올 부담을 일시적으로 피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예를 들어보자. 가격이 꿈틀거리는 것들 중에는 납품가격이 10% 이상 오른 달걀과 80㎏ 기준 가격이 20만원을 넘어선 쌀도 있다. 대형마트들은 마진을 줄이더라도 달걀가격(한판 30개 기준)이 8000원선을 넘기지는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 쌀의 경우 다소 복잡하다. 기준을 충족할 경우 정부는 공공비축미 공급에 나서겠다는 방침이지만 농협 등에서는 생산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농민들의 사정을 우선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작황 부진 등으로 지난해 물가당국과 가계부를 엉망으로 만들었던 사과는 올해도 주산지인 경상북도 지역이 산불로 피해를 입으면서 '금사과' 우려가 재현될 조짐이다.
한은은 국내 식료품 물가가 다른 주요국들에 비해 높은 것은 저조한 농업 생산성과 고비용 유통경로 등 구조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품목별 수급조절 같은 단기적 시장개입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이유다.
정부는 구두개입성의 긴급 대응과 더불어 구조적 해법도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필요하면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는 경고신호를 내놓는데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 서울·수도권 지하철 요금은 28일 첫차부터 150원 오르고 이스라엘.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금융시장과 호르무즈 해협은 살얼음판이다. 물가상승 파고의 직격탄을 맞는 서민들에게 방파제를 쌓았으니 견디라고 주문하는 것은 한없이 잔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