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전 세계는 수소 패권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탄소중립을 향한 글로벌 전환 속에서 수소는 새로운 에너지 질서를 형성하는 핵심동력으로 부상했다. 수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활용하는 국가는 산업전환의 주도권을 갖고 반대로 수소확보에 실패한 국가는 성장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우리나라를 독일, 일본과 함께 주요 수소 수입국으로 분류했다. 주요국이 수소확보를 위한 전략을 제시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2050년까지 전체 수소수요 2790만톤 중 82%인 2290만톤을 수입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처럼 수소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단연 수소운송·저장기술 경쟁력 확보다.
현재 장거리 해상 수소운송에 적합한 기술로는 액화수소, 암모니아, LOHC(액상유기수소운반체) 방식이 주로 거론된다. 액화수소 방식은 초저온에서 수소를 고밀도로 저장할 수 있어 대용량 운송에 유리하지만 극저온 플랜트와 저장·운송설비 등 복잡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고 글로벌 선도기업들이 핵심기술을 독점했다. 암모니아 방식은 생산부터 운송까지 기존 산업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암모니아로부터 수소를 고효율로 추출하는 기술이 아직 부족하다. LOHC 방식은 상온·상압에서도 안전하게 운송이 가능하고 기존 석유화학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직 전 세계적으로 상용화 전단계여서 기술 성숙도가 낮은 상황이다.
주요국들은 이미 수소운송·저장 인프라와 기술을 국가전략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독일은 호주, 캐나다 등과 수소 공급망 협약을 체결했고 기존 LNG(액화천연가스)터미널을 액화수소 및 암모니아용으로 전환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액화수소운반선을 건조하고 액화수소 및 LOHC 방식을 실증했다. 대표적 수소 수출국인 호주는 주요국들과 수소생산 및 수출을 위한 국제협력을 확대한다.
우리나라도 민간기업 중심으로 글로벌 선도기업과 협력을 통해 대형 액화수소 플랜트를 준공하거나 가동을 앞뒀고 국내 조선사는 액화수소운반선의 선급인증을 획득하며 기술경쟁에 본격 진입했다. 또한 암모니아 크래킹 파일럿 플랜트를 구축했고 학연 중심으로 LOHC 촉매 및 신소재 연구도 활발히 이뤄진다. 그러나 핵심기술의 자립도는 아직 낮고 수소운송·저장기술을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경쟁에서 우리의 기술적 위상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수소경제 달성을 위한 수소운송·저장 기술주권 확보전략' 보고서를 통해 수소운송·저장 기술주권 확보를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액화수소는 운송선과 저장탱크 등 대규모 인프라 기술의 국산화가 시급하며 암모니아는 응용개발과 법·제도개선을 중심으로 기술 상용화를 앞당겨야 한다. LOHC는 기초·원천기술과 촉매공정 기술에 대한 전략적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특히 암모니아와 LOHC는 아직 시장선점의 여지가 큰 기술로 지금이 기술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정부는 수소경제 육성 및 안전관리 관련 법률과 기준을 조속히 정비해 기술개발과 실증을 가속화하고 기업은 글로벌 선도기업과 기술협력을 통해 핵심역량을 내재화해야 한다. 동시에 주요 수소 수출국과 기술·정책연계를 강화하고 수소인증·무역기준 같은 국제논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선도적 입지를 구축해야 한다.
수소운송·저장기술은 단지 하나의 기술이 아니다. 수소경제의 '동맥'이자 대한민국의 미래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전략자산이다. 수소가 바다를 건너 우리 경제에 흐르려면 우리는 그 수소를 실어나를 '기술'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 수소경제의 미래는 결국 운송·저장 기술주권 위에 세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