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고 자동차와 부품에도 동일힌 수준이 적용됐다. 반도체와 의약품은 최혜국대우(MFN)를 보장받았고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와 4년간 1000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다행히 농축산물 추가 개방은 포함되지 않았다.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대미시장에서 충격을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무엇보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적용받는 15% 수준으로 관세를 맞춰 '경쟁의 균형'을 되찾았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력 품목의 수출이 급격히 위축되는 것을 막아낸 점도 성과다. 다만 이번 합의는 의회의 비준을 거치지 않은 행정부 간의 행정협정 성격을 띤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보호무역 기조가 언제든 다시 작동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이번 합의는 종착점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한 완충장치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한미 FTA 무용론'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관세혜택이 약화한 것은 사실이나 일본과 EU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는 기존 관세에 상호관세가 중복부과되고 세율도 19~50%에 달해 한국이 여전히 가격 측면에서 우위를 지닌다. 무엇보다 한미 FTA는 원산지 규정, 분쟁해결 절차, 표준·디지털규범 등 제도적 인프라를 제공한다. 통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FTA의 법적 안전판 역할은 더욱 강화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장의 어려움은 이미 뚜렷하다. 철강은 50% 관세로 직격탄을 맞았고 기계·변압기 등 철강 파생상품에도 고율관세가 부과됐다. 자동차 부품과 섬유·전자업계에선 바이어의 단가인하 요구와 발주지연, 물류비 상승이 동시에 나타난다. 특히 중소기업의 자금압박이 갈수록 심각해진다. 이번 합의의 진정한 성패는 정부가 피해기업을 얼마나 신속하고 실질적으로 지원하느냐에 달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3가지다. 첫째, 피해기업에 대한 '응급처방'이다. 금융권을 통한 긴급 운전자금 지원과 세제유예·감면, 무역보험 확대 등 기업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이 시급하다. 둘째, 투자와 공급망 연계다. 앞으로 확대될 대미투자를 국내 중간재·부품수출과 연결하고 미국으로 설비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관세비용 부담을 줄일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중소기업엔 미국 내 전용 산업공단 설치와 함께 현지 법규·물류·인증을 아우르는 패키지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수출 다변화와 내수보강이다. 유럽, 아세안, 인도, 중남미 등으로 시장을 넓히는 동시에 국내에선 에너지 효율제품 교체, 공공조달 확대 등을 통해 피해업종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이번 합의는 "관세폭풍 속에서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관세가 낮아졌다고 해서 문제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은 과제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풀어야 한다. 협상에서 지켜낸 균형을 현장의 경쟁력과 회복력으로 연결하는 일, 그것이 이번 합의 이후의 진짜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