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만 봐도 음성이 들리는 문장이 있다. "전하! 종묘사직을 보전하시옵소서!" 음성뿐만 아니라 파르르 떨리는 신하들의 허연 수염까지 자동 재생된다. 그런데 그 '종묘사직'이란 게 대체 무엇일까. 종묘는 서울 종로4가에 있고 사직은 사직터널 앞에 있는데…. 종묘는 대충 알 것 같은데 사직은 무엇일까.
지구 위 거의 모든 농업국가는 대지의 신과 곡물의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 역사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에는 근본 대지의 신 가이아(Gaia)와 곡물풍요의 신 데메테르(Demeter)가 있고 그리스 신화를 모방한 로마신화에서는 그 이름이 테라(Terra)와 케레스(Ceres)로 바뀌어 이어진다. 일상 외래어 '테라스'(terrace)와 '시리얼'(cereal)의 어원이 되는 여신들이다. 한반도에서도 오래전부터 대지와 곡물의 신을 모셨다. 토지신은 사(社), 곡물신은 직(稷)이고 둘을 합쳐 사직이라 하며 그들을 모신 곳이 사직단(社稷壇)이다. 종묘는 서울에만 있지만 사직단은 전국의 여러 주요 도시에 있다. 부산 사직야구장의 명칭도 사직단에서 유래했다.
한반도에서는 건국 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정궁과 좌묘우사(左廟右社)를 세우는 것이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고구려에서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고 백제, 신라, 고려에도 사직단이 있었다. 당연히 조선에서도 경복궁을 짓고 좌(동쪽)에 종묘를, 우(서쪽)에 사직단을 지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후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고 사직은 토지신과 곡식신의 신위를 모신 제단이다. 종묘가 왕통을 이어나가는 정치적 안정을 상징한다면 사직은 농업의 풍요라는 경제적 안정을 상징한다. 그래서 종묘사직(宗廟社稷)은 국가의 기반과 번영을 의미한다.
그 종묘와 사직이 일제강점기에 모욕당했다. 일제는 마치 목을 베듯 도로를 만들어 창덕궁과 종묘를 분리해버렸다. 그리고 창경궁은 창경원이라는 이름의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사직단도 훼손했다. 일제는 1910년대부터 사직단의 담장을 허물고 부속건물들을 철거했다. 사직단은 원래 외부와 철저히 분리된 성스러운 공간이었으나 담장이 사라지면서 신성한 영역과 외부 공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리고 창경원처럼 '사직공원'으로 만들었다. 테니스장과 수영장이 들어섰다. 궁궐에 코끼리와 사자를 들여와 모욕하듯 사직단에선 벌거벗고 물놀이를 하게 해서 성소를 모욕했다. 그리고 매년 행한 사직제례를 중단해 국가의 권위와 민족의 구심점을 파괴했다. 공간적, 의례적으로 철저히 훼손했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우선 '사직대제'라는 제사의례를 복원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공간적 복원을 시작했다. 그해 국립국악원도 '사직대제'라는 공연을 통해 사직제례악을 복원했다. 그로부터 8년 후 제사 준비시설인 전사청 권역이 복원돼 사직단의 제사기능을 회복했다. 지금은 향과 축문을 보관하고 국왕이 제를 준비하던 공간인 안향청 권역의 복원공사가 진행 중인데 2026년 완료될 예정이다. 공간과 의례의 복원에는 고증자료가 필요하다. 기록의 나라 조선은 사직단의 공간과 의례절차는 물론이고 제사 그릇과 음식에 이르기까지 글과 그림으로 낱낱이 기록해뒀다. 이런 기록을 바탕으로 공간적 복원뿐만 아니라 의례적 복원도 이뤄진다.
종묘와 사직이라는 말이 짝을 이루듯 종묘제례와 사직제례도 쌍벽을 이루는 의식이다. 종묘제례가 인간을 위한 제사라면 사직제례는 신을 위한 제사다. 종묘는 건축물과 기록물, 제례악이 모두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최근 국립국악원에서 제례악 복원에 무게를 둔 '사직제례악' 공연이 있었다. 제례악은 음악과 무용으로 이뤄진 예술형식이다. 매년 지속적으로 공연을 올리는 노력을 통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종묘제례악과 명실상부 짝을 이루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