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통상의 바다에서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
2025.09.18 04:11

430여 년 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남해의 거친 바다에서 써 내려간 난중일기를 읽고 있으면 오늘날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떠올리게 된다. 트럼프 1기와 2기에 한국이 마주한 국제통상의 세계가 임진년과 정유년의 그 험난했을 바다와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미국발 관세조치의 풍랑이 '수출한국호(號)'를 위협하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품목관세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른 상호관세에도 지난달까지 우리 수출은 비교적 선방했지만, 점증하는 대외경제의 불확실성으로 미래를 마냥 낙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 기업은 단일국가 기준으로 세계 최대 수입시장인 미국에서 국가별로 서로 다른 관세를 적용받는 주요 국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일방적인 관세부과와 보호무역 조치라는 '암초'가 곳곳에 숨어있는 통상의 바다에서 우리 기업들이 순항하려면 출항 전 본진에서의 충분한 보급, 철저한 유지보수, 그리고 유사시 지원체계도 촘촘히 갖춰져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바다는 대개 혼란과 두려움의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위기 극복의 무대이기도 했다. 충무공이 전대미문의 국난을 막아냈던 곳 역시 바다였다. 적의 수상 보급로를 끊어 전세(戰勢)를 반전시킨 충무공의 업적은 혼자만의 천재성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 수군이 해상에서 거둔 승리는 육지 의병의 협공을 통해 수군 병참기지를 안전하게 지켜줬기 때문이다. 또 육지의 백성들이 군량과 병장기 보급을 지원하면서 국가적 위기 앞에서 관(官)과 민(民)이 하나가 돼 국난을 극복했다.

지난 3일 정부는 미국 관세조치로 피해를 입은 중소중견 수출기업을 위해 '관세대응 지원 프로그램'을 내놨다. 내용을 살펴보니 지원정책의 종합판으로 볼 수 있다. 원청인 대기업의 수출감소로 납품상황이 악화된 협력사, 재무상태가 어려워진 수출기업, 운영자금이 필요한 현지진출 기업, 철강․알루미늄 파생상품 수출기업 등 피해 유형에 따른 자금과 컨설팅, 물류 편의성 등을 제공한다. 이와 함께 미국을 대체할 신시장 개척을 위한 금융·인증·마케팅 지원도 포함됐다. 일방적인 관세조치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내몰린 우리 기업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마련된 셈이다.

기회라는 선물은 때로 위기라는 포장지에 싸여 배달된다는 말이 있다. 국가별 각기 다른 관세율의 적용으로 공급망별로 일부 혼란도 있겠지만 분명 기회도 있을 것이다. 급변하는 통상환경 속에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도록 정부는 지원정책을 적시에 제공하고, 기업도 정부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면 당면한 위기가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효과적인 기업지원이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높아진 경쟁력은 다시 국가의 위상과 협상력을 높인다. 이번 관세협상에서 우리 협상단의 가장 큰 힘 역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로 대표되는 조선업의 저력이었다. 정부와 기업이 유기적으로 힘을 합한다면 이번 위기도 분명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K-조선과 충무공의 함대가 겹쳐 보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희철 한국무역협회 무역진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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