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수출 증대와 무역수지 흑자 집착의 이면

노진호 경제평론가·경제학 박사
2025.10.21 02:20
노진호 경제평론가·경제학 박사

많은 사람, 심지어 전문가들도 종종 수출과 무역수지 흑자는 좋은 것, 수입은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수출과 무역흑자는 GDP를 늘리지만 수입과 무역적자는 GDP를 줄이는 데다 외화부족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오해가 있다.

우선 자원활용 측면에서 수출은 비용이고 수입은 편익이다. 수출은 국내 노동을 투입해 만든 산출물을 외국인이 이용하는 것이고 수입은 별다른 국내 자원의 투입 없이 해외에서 만든 것을 국내에서 이용하는 것이다. 수출과 수입은 연관된다.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달성하려면 수입을 잘 활용해야 한다.

게다가 만성적인 무역흑자는 소비자와 노동자가 치르는 비용과 관련돼 있다. '무역전쟁은 계급전쟁이다'의 저자 마이클 페티스에 따르면 생산성과 무관한 수출증가는 교역조건의 개선과 구매력의 충분한 증가로 이어지지 못한다. 예컨대 관세나 환율인상, 임금이나 재정지출 억제, 소비자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방치하는 것 등을 포함해 소비를 억제하고 생산에 일종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모든 정책은 생산성의 개선 없이도 수출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소비는 더 비싸게, 생산은 더 싸게 만드는 이런 정책은 수출을 늘리는 만큼 국내 임금과 고용을 늘리지 못한다. 수출로 돈을 번 기업들도 늘어난 생산능력을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소화하기 위해 무역에 유리한 제조업 투자를 계속 확대할 수밖에 없다. 페티스에 따르면 만성적인 무역흑자국들은 대부분 제조업 비중이 높다.

그런데 제조업은 신흥 개발도상국의 추격으로 고용 흡수력이 줄어들고 있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무역수지 흑자가 지속될수록 경제 전체적으로는 미래의 일자리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제조업 비중이 높고 장기간 무역흑자를 유지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2024년 출생률은 일본 1.22명, 태국 1.20명, 중국 1.01명, 싱가포르 0.95명, 대만 0.86명, 한국 0.73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에 몰려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단순히 무역수지 적자누적과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발생한 게 아니다. 외화자산과 부채의 만기가 맞지 않아서 요구하는 즉시 외화부채를 상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발생했다. 금융회사의 외화순자산과 외화유동성을 제대로 감독한다면 변동환율 제도하에서 외환위기를 너무 걱정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미국은 낮은 제조업 비중에도 불구하고 금융과 IT 등 일부 서비스업 중심으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해왔고, 특히 소비시장을 배경으로 성장한 플랫폼기업들의 실적이 좋다. 영국, 캐나다 등의 경제구조도 크게 보면 미국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수출 제조업에 매달리면서 허리띠를 졸라맨 대가로 얻은 무역수지 흑자를 선진국의 소비와 재정지출을 뒷받침하는 국채 등에 투자한다.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국제경제 환경에서 이런 성장모델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의문이다.

경제학에서 가치(value)는 소비자의 주관적 효용과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형성되는 소위 '지불용의(willing to pay) 금액'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악기를 연주하면 할수록 악기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는 것처럼 소비하고 경험할수록 효용의 수준이 오히려 증가할 수 있음에 주목하는 경제학자도 많다. 조지 스티글러와 개리 베커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필수재가 아니었던 정보(데이터)나 외식, 여행, 예술, 문화 관련 고정지출이 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욕구는 다양하며 수동적이거나 고정적이지 않다. 진정한 국부는 달러화가 아니라 가치(value) 있는 물건과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렸다. 지속 가능한 소비가 이뤄질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관련 제도와 인프라를 정비하는 게 수출 밀어내기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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