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콜레라 창궐에 맞선 '파리 대개조'
오늘날 기후변화가 도시 위협, 재설계 필요
'집값 잡기' 넘어 '지속가능성' 관심을

프랑스 파리를 덮친 폭염이 글로벌 화제였다. 서유럽 다른 도시도 극한 기후를 마주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파리에 유독 관심이 집중된 것은 파리가 갖는 독보적인 위상 때문이다.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100대 도시'에서 파리는 지난해까지 5년 연속 1위를 지켰다. 음식과 패션, 역사, 예술의 중심지로 파리를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파리의 이미지는 19세기 중반 완성됐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조르주외젠 오스만 남작에게 맡겨 단행한 '파리 대개조'의 결과다. 그 이전까지 파리는 낭만의 도시가 아니었다. 거리엔 오물이 넘쳤고, 콜레라가 반복적으로 덮쳤다.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가전을 벌이기 유리했다.
오스만은 도시를 근본부터 바꿨다. 파리 개선문을 중심으로 직선의 방사형 가로망을 뚫어 군대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바람길을 만들고 하수도를 정비해 위생을 개선했다. 엄격한 건축 규제가 적용된 5~6층 높이의 통일된 석조 건물은 파리의 상징이 됐다.
그 과정에서 반발도 극심했다. 도심 주택이 철거되면서 노동자와 저소득층은 몽마르트르 언덕 등 도시 외곽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중심가 토지,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폭등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난 노동자들이 분노했고, 시민들이 정부 군대를 몰아낸 '파리 코뮌 봉기'의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파리 대개조의 결과물은 후손들에게 거대한 경제적·문화적 자산으로 남았다. 오스만의 도시계획은 이후 빈, 로마 등 유럽뿐 아니라 워싱턴DC, 부에노스아이레스, 하노이 등 전 세계 도시에 반영됐다. 일제강점기 경성부 도시 계획에도 오스만식 도시 구조와 가로망 이론이 적용됐다.
파리 대개조 이후 170여 년이 흐른 지금, 콜레라가 아니라 폭염이 파리를 위협하고 있다. 주요 관광지 개장 시간이 단축되고 파리 여행 자체를 미루는 사람도 늘었다. 넓은 석재 광장과 도로는 낮 동안 태양열을 흡수하고 밤에도 복사열을 내뿜는다. 아연 재질 일색의 지붕은 열을 쉽게 축적한다. 19세기 위생과 치안을 위해 단행된 오스만식 도시 개조가 현대 파리를 '거대한 오븐'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오스만의 도시계획이 실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 유럽은 지금보다 훨씬 서늘했고, 21세기 기후변화를 예측하기는 힘들었다.
도시는 그 시대의 가장 큰 위협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오늘날 그 위협은 기후다. 많은 도시가 파리 대개조에 버금가는 수준의 도시 재설계에 나서야 할 상황이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를 겪고 있고, 인도네시아는 지반 침하를 이유로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옮기는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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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가 도시 경쟁력에 부과하는 '기후 페널티'를 줄이기 위한 투자도 중요해진다. 우리 역시 이명박 서울시장 재임 시절 단행한 청계천 복원은 바람길을 회복시켜 도심 열섬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여줬다. 현재 서울시 역점사업인 세운상가 철거와 공원화 사업 역시 도시 열섬 현상 완화와 바람길 확보를 주요 목표로 포함하고 있다.
올여름 서울도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극한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현 상황을 국가 재난 사태로 보라"고 국무위원들에게 지시할 정도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커졌다.
하지만 우리의 전반적인 도시계획 패러다임은 집값 관리라는 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 집값 상승을 막는 것이 도시계획의 지상목표다. 주택 보유자는 세금이 늘어 불만이고 무주택자는 전월세가 뛰어 피해를 보는 수요억제 위주의 주택정책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보존 중심의 경직된 건축 규제가 도시의 진화를 막는다.
집값에 매몰돼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되돌아볼 때다. 도시계획의 목표는 지속가능성이어야 한다. 집값이 안정되는 것과 도시가 번영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집값을 붙잡는다고 도시의 경쟁력까지 지킬 수는 없다. 오히려 도시가 매력적이고 가능성이 넘칠수록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스만은 동시대의 거센 반대를 감수하면서도 가장 매력적인 도시를 남겼다.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길 유산은 기후변화 속에서도 번영할 수 있는 도시라는 보다 큰 가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