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AEP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마무리됐다. 외교적으로는 대미투자와 관세를 둘러싼 미국과 회담이 잘 마무리될 것인지, 미중 정상회담에서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할 것인지 걱정이었다. 아니 행사 자체를 잘 치를지도 우려된 것이 사실이었다. 결론적으로 모두가 어느 정도 원하는 것을 얻고 만족할 수 있었다. 한국과 미국은 관세와 대미투자에 대한 큰 틀에 합의했다. 미국과 중국은 희토류 통제와 중국 기업 제재를 서로 교환하면서 갈등을 완화했다. 경주시민을 포함한 수많은 인력의 동원과 노력을 통해 행사 자체도 큰 문제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숙제가 남았다.
관세협상 및 대미투자를 둘러싼 양측의 힘겨루기 과정에서 원자력잠수함이 등장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건조를 조건으로 승인하면서 원자력잠수함이란 새로운 이슈가 등장한 것이다. 당초 우리는 3500억달러 상당의 대미투자 대가로 한국 내에서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자적인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는다면 왜 농축과 재처리를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원자력잠수함 독자건조의 필요성을 제시했고 잠수함에 필요한 핵연료 확보를 위한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을 허용할 것인지로 논의가 전환됐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무기에 사용할 수 있는 90% 이상으로 농축한 우라늄을 원자력잠수함 연료로 사용하지만 프랑스의 경우 20% 수준으로 농축한 우라늄을 사용한다. 20% 농축우라늄은 최근 각광받는 SMR(소형모듈원자로)의 원료로도 사용될 수 있다. 핵무기 개발에 대한 우려 없이 평화적 목적의 핵 이용에 있어 20%는 서로가 타협할 수 있는 절충점이었다. 당연히 원자력잠수함은 우리 기술로 국내에서 건조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고 이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허가만 받아내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화오션이 소유한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원자력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하면서 구도가 복잡해졌다. 당장 어떤 모델로 원자력잠수함을 건조할지부터 모호하다. 독자설계인지, 아니면 미국의 버지니아급 공격형 원자력잠수함을 기반으로 건조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미국의 원자력잠수함을 직도입하는 것인지 다양한 방안이 논의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새로 건조될 원자력잠수함에 필요한 농축우라늄은 미국이 공급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것인지도 뚜렷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국내에서 재처리 및 농축이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될지, 아니면 미국 의회의 입법을 통해 원자력잠수함과 관련한 수출통제가 면제되는 쪽으로 진행할 것인지도 복잡한 과제다. 결과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을 역제안한 것이다.
원자력잠수함 설계 및 건조는 10년 이상 걸리는 긴 과정이다. 미국이 한국의 원자력잠수함 보유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원자력잠수함 운용, 유지·관리체계 및 운용인력 양성 등과 관련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일각에서 논의되는 탈원전 정책과 원자력잠수함 확보가 따로 갈 수 있는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은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이를 토대로 어떻게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지가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