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정유주된 흥구석유, 방역주 파루의 데자뷔

[광화문]정유주된 흥구석유, 방역주 파루의 데자뷔

김명룡 증권부장
2026.03.23 05:30

태양광사업을 하는 파루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어찌 된 영문인지 십수년째 방역관련 테마주로 꼽힌다.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MERS), 2020년 코로나19 창궐 때 어김없이 주가가 급등했다. 이 회사가 처음 방역관련주로 이름을 올린 것은 '손 세정제'와 해충퇴치제를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회사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이 미미하지만, 시장에선 이미 방역테마주로 묶였다. 지난해 파루 매출액에서 손 세정제 등 위생환경 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마주로 한번 묶인 이후 바이러스가 확산할 때마다 손 세정제 수요가 폭발할 것이란 단순한 논리에 이 회사의 주가가 급등했다. 2009년 신종플루가 확산하던 시절 파루의 주가는 단기간에 10여배 올라 시가총액이 1500억원 정도로 커지기도 했다. 이후 2015년과 2020년에도 짧은 시간 주가가 급등하다 급락하는 패턴을 보였다. 본업인 태양광보다 부업인 손소독제가 부각되는 기이한 현상이 연달아 벌어진 것이다. 테마가 지나간 다음은 늘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금 파루의 시가총액은 395억원에 불과하다.

파루를 다시 떠오르게 한 건 흥구석유의 주가 급등락이다. 이 회사는 석유 테마주로 묶여 있다. 회사 이름에 '석유'가 있으니 제법 그럴듯해 보인다. 흥구석유는 GS칼텍스로부터 석유류를 매입해 대구 경북 지역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최근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의 여파로 유가가 급등하자 주식거래가 급증했다. 분쟁 이전 1만7000원대였던 주가는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상한가를 기록했다. 지난 5일 기록한 장중 최고가는 3만6200원. 주가가 두배 오르는데 단 3거래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제유가가 급등한다고 해도 회사의 영업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도 아닌데도 말이다.

흥구석유의 지난해 매출액은 1000억원 당기순이익은 2억원이다. 52주 최고가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1600배 정도였다. 결국 광풍은 오래가지 않았다. 테마주의 끝은 늘 그렇듯 허망했다. 흥구석유의 현재주가는 1만9000원대로 급등 전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가는 기업의 실적이나 가치라는 본질에 귀결된다. 흔히 기업의 주가를 '산책하는 개'에 비유하기도 한다. 주가란 주인(기업가치)이 산책을 나가면 그 뒤를 따르는 반려견과 같다는 것이다. 산책을 나간 반려견은 주인을 앞서기도 뒤처지기도 하지만 결국 주인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파루와 흥구석유의 사례는 주인과 너무 다른 길을 간 반려견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보여준다.

사실 테마주 투자자들도 이런 위험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들은 새로운 테마주를 또 다른 거대한 투기판 정도로 여겨지는 듯하다. 변동성을 수익의 기회로 보는 것이다. 사실 기업의 가치야 어떻든 주식을 남들보다 싸게 사서 비싸게 사줄 이에게 넘기기만 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거래량이 폭등하고 주가가 급등락하는 주식이야말로 투기를 하기에 적당한 종목이다.

수없이 경험한 테마주의 결말은 대동소이하다. 테마라는 광풍은 언제나 짧고 강력하게 불고 허망하게 끝이 난다. 물론 내가 쥔 폭탄이 터지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면 문제가 없을 순 있다. 하지만 눈치게임에서 져서 탈출의 시기를 놓치고 마지막에 남겨진 이들은 막대한 손실을 피할 길이 없다.

테마주 투자도 투자의 한 방식일 순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길게 보면 주식시장은 냉혹하고 이성적이다. 다시 차가운 이성의 눈으로 시장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흥구석유의 주가가 고점을 향해 치닫던 시기에 주요 주주는 보유 지분을 대거 매각하며 약 220억원을 현금화했다. 개미들이 가장 뜨거울 때 내부자는 차갑게 이익을 실현하고 떠났다. 내부자가 챙긴 막대한 이익은 누군가의 손실일 수도 있단 점을 잊지 말자.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김명룡 증권부장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卽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卽殆). 바이오산업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 먹거리입니다. 바이오산업에 대한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