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고령화, 노동력 감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전통적 농업시스템이 한계에 직면했다. 예측 불가능한 폭염과 집중호우는 작황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농업인구의 평균연령은 이미 68세를 넘어섰다. 일손부족은 단순한 노동력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와 지식단절의 문제로 이어진다. 이제 '누가 농사를 짓는가'보다 '어떻게 농업을 지속할 것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농업의 지속가능성 역시 AI(인공지능)와 데이터에서 답을 찾는다. AI는 농업생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센서와 드론, 위성을 통해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작물의 생육환경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고 물과 비료,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제어한다. 자율주행 트랙터와 수확로봇은 농촌의 부족한 노동력을 보완하며 AI 기반의 육종기술은 신품종 개발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AI 농업기술을 식량안보와 산업경쟁력의 핵심영역으로 인식하고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미국은 농업부(USDA)와 국립과학재단(NSF)이 공동으로 'AI연구소'(AI Institute)를 설립해 정밀농업, 자율주행 농기계, 디지털 육종 등 핵심분야를 집중지원한다. 유럽연합은 '팜투포크(Farm-to-Fork) 전략'을 통해 AI-로봇-바이오를 결합한 지속가능 농식품 시스템을 구축했다. 일본은 농업 데이터 연계 플랫폼인 'WAGRI'(和+Agriculture)를 민간에 개방해 기업들이 다양한 AI 농업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2023년 7월)과 '제1차 스마트농업 육성 기본계획'(2025~2029년) 수립을 통해 AI 농업 기반을 빠르게 확충해왔다. AI 기반 농업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을 위한 사업을 지원하고 스마트팜다부처패키지혁신기술개발사업과 같은 범부처 협력이 본격화하면서 기술, 인력, 데이터가 결합된 R&D 생태계가 형성된다. 일부 지역에선 스마트팜 도입으로 생산성이 30~50% 향상되고 노동시간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는 성과도 나타난다. 상주, 김제, 고흥, 밀양의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기술실증과 청년창업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최근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발간한 'AI 기반 농업육성을 위한 정부 R&D 지원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농업 AI 수준은 여전히 선진국 대비 3~4년의 기술격차를 보인다. 양질의 농업 데이터 구축과 부처간 표준화가 미흡하며 현장농민과 AI연구자, 개발자의 협업도 원활하지 않다. 농업기업들이 대부분 영세하고 민간투자가 부족해 정부과제에 상당부분 의존하다 보니 스케일업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결국 농업 AI의 성공 역시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개별 기술보다 데이터와 현장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느냐에 달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선 공공과 민간이 보유한 농업 데이터를 통합하고 AI 학습을 위한 개방형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자율주행 농기계, 농업로봇, 디지털 육종 등 3~4개 핵심분야에 선택과 집중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전용펀드와 세제혜택으로 민간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농민이 직접 참여하는 현장실증과 교육프로그램을 확대해 기술의 실효성을 높이고 K스마트팜과 한국형 모델을 글로벌 시장에 지속적으로 확산해야 한다.
농업은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국민의 삶과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국가 전략과제다. AI는 부족한 농촌의 일손을 대체할 뿐만 아니라 농업의 생존 자체를 연장하는 도구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농업의 새로운 감각이 되고 정부가 이를 산업생태계로 엮어낸다면 대한민국은 농촌소멸의 위기를 넘어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지능형 농업국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