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KDI)는 최근 한국 경제가 내년에 1.8%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 둔화 속에서도 시장금리 하락과 확장적 재정정책의 영향으로 내수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KDI는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을 대거 투입해온 기조에서 벗어나, 이제는 '확장'보다 '정상화'가 필요한 국면에 들어섰다고 명확히 지적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49.1%로 OECD 평균보다 낮지만, 증가 속도만큼은 OECD 최고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4년 뒤에는 채무 비율이 GDP 대비 58%에 이를 전망이다. 매년 2.2%포인트씩 증가하는 셈이다. 관리재정수지도 이미 GDP의 4%를 웃도는 구조적 적자에 고착되어 있다. 이는 정부가 걷는 세금보다 훨씬 많은 지출을 하고 있으며, 그 차이를 메우기 위해 꾸준히 국채를 발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올해 9월 기준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이미 100조 원을 넘어섰고, 국가채무는 1259조 원을 넘어섰다. 내년 국채 이자만 약 35조 원 내외로 추산된다.
더 큰 문제는 이 부채가 어디에 쓰이고 있는가이다. 미래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투자·R&D·구조개혁이 아니라, 단기적 체감경기 개선과 정치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선심성 지출이 누적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부채가 기술 역량 축적의 결과라면 그 자체가 투자이고 미래 성장의 사다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채가 정치적 필요의 산물로 쌓인다면, 그 부채 증가에 따른 이자 부담은 오히려 기술개발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배분돼야 할 재원을 갉아먹는 구조가 된다.
2026년 예산안(728조 원)은 복지·민생 분야에 큰 비중을 두면서 부채 증가가 기술 역량 강화보다는 선심성 지출에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물론 정부는 R&D 예산을 35.3조 원으로 편성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이 중 AI 관련 예산은 10.1조 원으로 올해(3.3조 원) 대비 거의 세 배로 늘렸다. 이는 분명 미래 전략 산업에 대한 투자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보건·사회복지·고용 분야 예산은 269.1조 원에 달해 전체 예산의 약 37%를 차지한다. 지역화폐 등 선심성 '민생·사회연대 경제' 항목에는 26조 원을 안배하여 AI 관련 예산의 2.5배에 달한다.
이처럼 막대한 규모의 사회복지 지출이 부채를 통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면,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 정치적 요구나 체감경기 부양을 위한 선심성 지출로 볼 여지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부채 누적이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혁신을 위한 재원 확보를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자 부담이 커지면, 미래 성장 엔진인 기술·R&D 투자에 투입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결국 부채가 '투자'가 아니라 '부담'으로 전환되면서, 재정 확장이 오히려 미래의 기술 경쟁력을 약화하는 구조로 흐르게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가계부채 부담이 세계적으로 높은 국가다. 2025년 1분기 기준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3%(국제금융협회(IIF) 통계 기준)로 세계 5위 수준이다. 가계와 정부 부채가 동시에 늘어나는 이중 레버리지 구조에서는 경기 하락기에 재정이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 빠르게 약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인구구조 변화는 재정의 항로를 장기적으로 제약한다. 저출생과 고령화로 세수 기반은 약화하고 복지 지출은 급증하게 된다.
재정의 본질은 지출을 통해 미래의 구조를 설계하고, 기술과 생산성을 높여 다음 세대의 기회를 확장하는 중요한 도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 확장이 아니라 재정 정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