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이익 뒤에 숨은 손실 계산서[기자수첩]

6조 이익 뒤에 숨은 손실 계산서[기자수첩]

김도균 기자
2026.05.14 05:50

"돈 번다고 욕 먹던 때가 오히려 나을 정도였죠."

최근 1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만난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국제유가 급등으로 정유사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자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횡재세' 논란이 불거졌다. 유가 상승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만큼 사회적 부담도 져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하지만 이후 유가가 안정세로 접어들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정유업계는 곧바로 대규모 적자 가능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앞서 털어놓은 업계의 푸념은 이같은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재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2월28일 발생한 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정유 4사(SK이노베이션(129,700원 ▲1,200 +0.93%)·HD현대오일뱅크·GS(71,900원 ▼4,300 -5.64%)칼텍스·에쓰오일)는 올해 1분기 합산 기준으로 6조원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내놨지만 막상 웃지는 못하고 있다. 이번 실적의 상당 부분이 '재고평가이익'이라서다. 가장 먼저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만 봐도 1조2310억원의 영업이익 가운데 절반 이상인 6434억원이 재고 관련 이익이었다.

정유업계가 호실적에도 걱정부터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가 급등을 초래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거나 해소되면 국제유가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 경우 이번 분기에 이익으로 잡힌 재고는 거꾸로 재고평가 손실로 돌아온다. 고가에 도입한 원유가 본격적으로 생산에 투입되는 2분기부터는 수익성 부담도 커진다.

정부의 최고가격제로 인한 손실이 확정되지 않은 점도 부담이다. 정부는 유가 급등에 따른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고가격제를 도입했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정유업계의 몫이 되고 있다. 업계 안팎에서는 정유 4사의 관련 손실 규모가 이미 조 단위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지만 손실 보전 논의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업계는 국제 시세를 기준으로 손실을 산정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정부는 회계상 원가를 기준으로 보고 있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정유사들의 손익 계산서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누가봐도 '어닝 서프라이즈'로 보겠지만 그 뒤에는 언제든 손실로 잡힐 수 있는 다른 계산서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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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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