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판 '미생'으로 불리는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가 화제다. 연말 인사 시즌을 앞둔 이동통신 업계에선 "웃으며 보다 울며 끝난다"고 한다. 임원 승진을 목전에 두고 지역 공장의 안전관리팀장으로 좌천되는 김부장의 처지가 업계 사람들에겐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아서다. 더욱이 유·무선 본업보다 AI 신사업이 주목받는 시대엔 한때 '영업왕'이던 베테랑도 하루아침에 조직의 짐이 될 수 있다.
극 중 김부장은 자신을 내치려는 상사에게 "나 일 잘하잖아. 큰 건도 한 건 했잖아" "나한테 어떻게 이래,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며 읍소한다. 하지만 이 대사가 마냥 짠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소비자를 기만한 데 대한 최소한의 반성조차 없기 때문이다. 기존 고객을 잃었지만, 신규 고객을 유치했으니 된 것 아니냐는 식이다. 김부장은 승진에서 밀릴까 전전긍긍하며 보여주기식 대처만 했을 뿐, 정작 고객사에 대한 사과는 후배들에게 미뤘다.
김부장을 좌천시킨 사건은 2021년 KT의 '초고속 인터넷 속도 저하' 논란과 꼭 닮았다. IT 유튜버 잇섭이 제기한 "10기가 인터넷이 실제로는 100Mbps 수준"이라는 폭로가 당국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드라마에서처럼 KT가 대행사를 통해 잇섭에 영상 삭제를 요청한 것이 알려지며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졌다. 드라마 속 공공사업 입찰 담합이나 대규모 구조조정 등도 KT를 떠올리게 한다.
평범한 중년 가장에게 이처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몸담은 '통신'이라는 산업이 국민 생활의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통신은 안정적인 일상과 산업에 필수적인 기반시설인 만큼 임직원에 요구되는 기본 책무도 높다. 최근 KT는 해킹 사고에 대한 잇단 말 바꾸기로 고의 축소·은폐 의혹을 받고 있다. 혹시 김부장처럼 보신주의에 빠져 문제를 숨이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9회말 2아웃엔 그냥 머리 비우고 풀스윙하는 거야." 김부장에게서 대기업 25년 근속 저력이 느껴지던 대사다. 위기에 처했을 때 할 수 있는 모든걸 해야 한다는 말은 옳다. 전례없는 위기에 처한 KT 역시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전력투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