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스테이블코인이 바꾸는 무역결제의 미래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2025.11.24 02:05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국제무역에서 가장 느린 것은 물류가 아니라 돈이다. 선적은 하루에 끝나도 결제는 종이서류, 은행 영업시간, 중개은행을 거치며 1주일씩 지연된다. 이 오래된 병목을 해소할 대안으로 스테이블코인이 부상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엔·위안화 등 법정통화 가치에 일대일로 고정된 디지털 자산이다. 블록체인 지갑만 있으면 시차와 영업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대금을 이체할 수 있고 수수료도 은행 송금보다 낮다. 실제로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결제의 상당부분이 기업간 거래(B2B)에서 발생할 정도로 활용이 확대된다. 전통적으로 신용장과 송금이 담당한 역할을 디지털 토큰이 대체하는 모습이다.

이 변화는 기술혁신을 넘어 미중경쟁의 새로운 무대로 확장됐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달러결제망'으로 보고 규제를 정비했다. 올해 제정된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발행사의 준비자산을 국채·예금 등으로 제한해 안정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글로벌 확산을 뒷받침한다. 종이달러가 디지털 네트워크로 확장되며 통화패권의 기반을 넓히려는 전략이다.

반면 중국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신흥국에서 '디지털 달러화'를 가속화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자국의 디지털 위안화(e-CNY) 확산이 지지부진하자 홍콩에서 역외 위안화(CNH) 스테이블코인을 시험하며 해외 활용도를 넓히려 한다. 국제결제은행(BIS)과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관도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인프라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비자와 JP모간은 해외결제·정산에 스테이블코인 실증을 확대한다. 이런 흐름은 결제네트워크가 여러 통화 기반의 토큰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국제무역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의 존재감은 커진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적용하면 선적, 서류제출, 결제가 자동으로 연동돼 서류분쟁이나 지연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특히 중소기업은 환리스크와 수수료 부담을 낮출 수 있어 해외 바이어와의 소액·고빈도 거래에 유용한 대안으로 평가된다.

한국의 법·제도는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무역결제에 적용하려면 외국환거래법과 대외무역법 등에 토큰 기반 결제수단의 지위와 활용범위를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무역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은 은행, 전자금융업자, 블록체인 인프라가 함께 작동하는 구조여서 기존 제도만으로는 포괄하기 어렵다.

한국도 구체적인 제도설계를 본격화해야 한다. 원·달러화 기반의 제도화한 스테이블코인 모델을 마련해 수출기업이 기존 신용장이나 송금방식에 더해 디지털 토큰결제를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본·유럽연합(EU)·싱가포르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와 발행·운용기준을 정비하며 제도권 편입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아직 스테이블코인이 상품무역의 일반적 결제수단으로 자리잡은 단계는 아니지만 주요국이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는 만큼 한국도 뒤처지지 않도록 대응할 필요가 있다.

돈의 길이 바뀌면 무역의 지도가 다시 그려진다. 스테이블코인은 그 지도의 초안을 이미 우리 앞에 펼쳐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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