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은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다. 관람객은 모나리자 그림, 밀로의 비너스, 니케상과 함무라비법전 원본 석주 등을 둘러보며 문명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체험한다. 마지막 들르는 코스는 기념품숍이다. 모나리자가 디자인된 티셔츠와 에코백, 머그잔, 니케상 미니어처, 전시품 도록 등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곳을 다녀갔음'을 인증하는 기억의 물질화며 쇼핑은 경험을 구체화하는 의식(ritual)이다. 이를 '경험경제'(experience economy)라 부른다. 사람들은 기념품을 사지만 사실은 현지에서 느낀 감정과 경험, 추억을 구매하고 소비한다. 이런 모습은 세계 어느 유명 유적지를 가도 비슷하다. 기념품은 그 공간의 이야기를 집으로 가져가는 상징물이고 문화유산이 문화상품으로 확장되는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연간 관람객 600만명, 외국인만 20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경복궁에는 전문상품관이 없다. 경복궁 수정전 앞 매장에서 음료와 전통문화 상품을 팔지만 규모가 작고 휴게공간도 부족하다. 때문에 국가유산청과 국가유산진흥원이 '경복궁 국가유산 플래그십스토어(대표상품관)'를 만든다는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2026년 설계를 거쳐 2027년 완공 예정인 이 공간은 경복궁 동편 주차구역에 국가유산 기반의 경험경제를 본격화하는 플랫폼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경험경제와 추억소비를 통해 K헤리티지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구현되는 문화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실감형 전시와 미디어아트를 만날 수 있고 궁중다과를 맛볼 수 있는 카페와 여유롭게 쉴 수 있는 휴게공간도 들어설 예정이다.
관람객이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경험경제는 더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관광은 하나의 완결된 문화체험으로 완성될 수 있다. 무형유산 보유자의 공예품, 소상공인의 전통문화 상품도 함께 전시·판매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기념품 판매를 넘어 한국의 예술혼과 장인정신이 깃든 상품을 외국 관광객에게 소개하는 글로벌 유통의 장이 열리게 된다. 장인과 소상공인은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고 관람객은 궁궐굿즈 같은 품격있는 전통문화 상품을 만날 수 있어 '국가유산산업 생태계'를 실험하는 실증무대가 될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보여준 현상은 이런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호랑이, 갓, 일월오봉도, 달항아리, 곤룡포 등과 관련된 상품은 전 세계 팬의 관심을 끌며 인기상품으로 등극했다. 국가유산진흥원의 온라인 매출도 함께 증가했다. 한국 전통문화가 K팝, K드라마 못지않게 세계 문화산업에서도 경쟁력 있는 '원형 문화자산'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다.
국가유산진흥원은 그간 전통문양, 궁중미감, 무형유산 등을 활용해 1700여종의 국가유산 상품을 개발·판매했고 장인, 디자이너, 청년 창작자와 협업하면서 생태계를 키웠다. 앞으로 대표상품관의 핵심은 '무엇을 파느냐'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돼야 한다. 전통문양과 유·무형유산을 미디어아트나 체험프로그램, 대표상품과 결합해 한국의 전통을 보고 만지고 경험하고 소비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가유산 상품의 가치는 역사적 기억과 문화적 경험을 소비하는 데 있다. 이제 한국 전통문화와 국가유산은 'K헤리티지'라는 이름으로 세계와 소통하면서 새로운 문화경제의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으며 국가 이미지 제고와 문화외교에도 기여한다.
어제를 담아 내일에 전한다. 국가유산청의 슬로건이다. 전통과 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만이 아니라 미래를 여는 역사적 자원이자 국가유산 산업화의 자산이다. 경복궁 대표상품관은 수백만 관람객이 한국 전통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 유산이 상품으로, 관람이 경험으로, 그 경험과 기억이 산업이 되는 선순환, 이것이 K헤리티지가 만들어갈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