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외통수

강기택 기자
2025.12.24 04:11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35년부터 시행하려던 '내연기관차 판매 전면금지'안의 폐기를 지난 16일(현지시간) 제안했다. 2035년 신차의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기존 100%에서 90%로 낮추는 것이 핵심이다. 순수 전기차와 수소차뿐만 아니라 친환경 철강 사용 등 조건을 충족하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와 고효율 내연기관차, e퓨얼(합성연료)차 등의 판매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독일 폭스바겐은 얼마 전 드레스덴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자국 공장의 문을 닫는 것은 창사 88년 만에 처음이다. 2002년부터 가동된 이 공장은 최근까지 주력 전기차인 'ID.3'를 생산해 왔다. 고객이 유리 너머로 조립 과정을 볼 수 있어 '전기차의 미래 쇼케이스'로 활용하던 곳이다. 하지만 인건비, 물류비 부담이 컸고, 유럽과 중국에서 판매가 부진한 데 따른 실적 악화도 겹쳤다.

#포드자동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 맺었던 9조6030억 원 규모의 배터리 장기 공급계약을 최근 해지했다.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에서 생산하려던 물량이었다. 주력 전기 상용차인 'E-트랜짓(E-Transit)' 등 유럽 판매용 모델에 적용할 예정이었다. 전기차 대신 수익성이 높은 하이브리드와 내연기관 트럭에 집중한다는 게 포드의 스탠스다.

세 가지 사례는 얼핏 별개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다. U턴으로 보든, 속도 조절로 보든 간에 유럽의 전기차 올인 전략이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이라는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EU 당국자들은 "공급을 강제하면 수요는 따라온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기차 100%'라는 이상을 향해 갈수록 테슬라나 중국 전기차 업체들에 시장을 내주는 구조가 됐고, 폭스바겐을 비롯해 벤츠, BMW, 포르쉐, 페라리 같은 유럽 완성차 업체와 부품업체들은 더욱 궁지로 내몰렸다.

이들 업체는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전동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올리버 집세 BMW 회장은 "2035년 내연기관차 금지는 유럽 산업을 위축시키는 잘못된 결정"이라고 했다. '환경을 지키려다 산업이 죽는다'는 위기감 정치권도 움직였다. 유럽 최대 정파인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드 베버 대표는 EU의 정책 변경에 대해 시장의 현실을 도외시한 '이념적 금지 정책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지금까지 유럽 자동차 산업이 얼마나 한길로 달려왔는지는 중국과 비교하면 잘 드러난다. 중국 자동차공학회의 로드맵은 2035년 신에너지차 50%, 저연비차 50%다. 신에너지차는 전기차,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수소차(FCEV) 등이고, 저연비차는 일반 하이브리드(HEV)다.

유럽이 HEV를 '청산해야 할 내연기관'으로 분류한 것과 달리 중국은 '에너지 절감차'로 보고 살려 두기로 한 것이다. 전기차로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해가는 동시에 자국의 넓은 영토에 충전소를 촘촘히 깔 수 없다는 '전력망의 한계'를 고려한 실사구시적 조치다.

한국 정부의 탈탄소 로드맵은 EU의 기존 규제를 참고해 2035년 등록차량 중 무공해차 비중을 30~35%(840~980만 대)로 늘리는 것이다. 이를 달성하려면 2035년 신차 판매의 65~75%가 무공해차여야 한다. 한국의 '무공해차' 정의에는 유럽처럼 HEV가 빠져 있다. 그만큼 벅찬 수치라는 얘기다.

그러니 진정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의 성장과 발전을 바란다면 EU를 벤치마킹한 만큼이나 EU의 선회를 참조해야 한다. 자칫 1만여 내연기관차 부품업체를 고사시키고, 수십 년간 쌓아온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 자체를 훼손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탄소중립 관련 회의에서 '선립후파(先立后破)'를 수차례 강조했다. 새로운 것을 세우기 전에 옛것을 깨뜨리지 말라는 뜻이다. 스스로 패를 버리면서 외통수에 걸린 유럽과 다양한 패를 쥐고 있는 중국의 명암은 바로 이런 사고방식에서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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