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마두로 체포와 국제법의 이상과 현실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2026.01.08 02:05
구민교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지난 1월3일 새벽, 미국 특수부대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전격 체포해 미국으로 압송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독재로부터 해방"이라는 환호와 "명백한 침략"이라는 야유가 엇갈리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이 사건은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이번 작전이 국제법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행위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법의 언어 이면에서 작동하는 '힘의 정치'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국제법이라는 거울에 비친 이상만을 바라보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첫째, 현직 국가원수가 타국의 사법권으로부터 보호받는다는 국제관습법상의 원칙인 '인적면책'은 천부권리가 아닌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이는 절대규범이라기보다 상호주의에 기초한 신사협정이다. 마두로 사례는 이 면책이 타국의 정치적·외교적 인정(認定)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미국은 마두로를 정당한 국가원수가 아닌 기소된 범죄자로 규정함으로써 면책 방어막을 제거했다. 실질적인 국가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국제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대만의 상황을 개인의 차원으로 옮겨놓은 게 마두로인 셈이다. 이번 사건은 '인정 없이는 면책도 없다'는 정치논리가 국제관습법을 압도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마두로의 체포를 규탄하면서도 대만의 주권적 지위문제에 침묵한다면 이는 일관성 없는 선택적 분노에 불과하다.

둘째, 국제법의 강행규범과 '실효성 있는 정의'(enforceable justice) 사이의 긴장이다. 유엔헌장 제2조 4항이 규정한 '무력사용 금지'는 국제법의 성역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미국은 이번 작전을 주권침해가 아닌 마약테러범에 대한 사법집행이자 확장된 자위권 행사로 재구성했다. 타국 영토에서 강제압송이 주권침해임은 분명하지만 미국은 마약 카르텔 척결이라는 보편적 정의를 내세워 논란을 우회한 것이다. 러시아, 중국, 북한의 무력사용 금지규범 위반이 일상화한 현실에서 오직 마두로 사건에만 실효성을 상실한 강행규범을 엄격히 들이대는 것은 규범적 위선이다. 지난 80여년 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간 이해관계의 충돌로 사실상 집행불능 상태에 빠진 유엔헌장 체제 대신 미국이 그 집행력을 독자적으로 행사한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셋째, 근대 국제법의 기초를 닦은 휴고 그로티우스의 '전쟁권'(jus ad bellum) 관점에서 보더라도 미국이 국제법을 실질적으로 위반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전쟁권 이론은 '정당한 전쟁'(just war)의 요건으로 정당한 원인, 최후의 수단, 비례성의 원칙 등을 제시한다. 미국은 이번 작전을 이 형식요건에 맞춰 설계했다. 마약유통을 국가안보에 대한 비전통적 공격으로 규정하고 장기간의 외교적·사법적 실패를 근거로 최후의 수단임을 강조했으며 전면전이 아닌 정밀 생포작전을 통해 비례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마두로 체포를 국제법 위반으로 단정하는 시각은 국제법의 이상에만 기대고 현실은 외면하는 태도다. 국제법은 약자가 가진 최후의 방어선이긴 하지만 동시에 강자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은 국제법이 주권을 위한 최후의 보루일지라도 권력은 안보의 이름으로 그 경계를 넘나들 수 있다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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