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변명

양지훈 변호사
2026.02.05 02:05
양지훈 변호사

한국에서 쓰이는 관용어구 중 가장 오염된 단어는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말 아닐까. 이 단어는 그 자체로 가치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말로 보이지만 그 용례를 살펴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흔히 조직이나 회사에서 인물평을 하다 누군가 "A는 자유로운 영혼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떠올려보자. 이 말에는 평소 조직에 맞지 않는 사람, 튀는 사람을 일컫는 모난 돌과 같은 부정적인 평가가 묘하게 결합돼 있다.

생각해 보면 영혼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육체 속에 깃들어 생명을 부여하고 마음을 움직인다고 여겨지는 무형의 실체'인 영혼이 회사원 사이에서는 오용되는 것이다. 구속된 영혼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자유로운 영혼들은 곧잘 고문관, 문제사원으로 낙인찍힌다. 이들에게 조직은 특별한 관심과 배려가 아니라 차별과 배제를 선사하는데 기업의 인사팀이 이들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양성과 포용성이 부족한 한국의 조직세계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하면 자유로운 영혼이 돼버린다.

안타까운 사실은 과거 한국의 사법부가 다른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법관에 대해서도 블랙리스트 제도를 운용했다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 리스트에 오른 판사에 문유석 판사가 있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 중 하나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독려한 칼럼과 관련돼 있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은 문제의 칼럼이 게재된 후 그를 '근무태도 관찰대상'으로 분류했고 2016년 1월엔 '물의 야기 법관' 리스트에 올렸다. 그는 결국 2020년 1월 평생 법관으로 살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뒤로 한 채 법복을 벗는다.

지난달 새해 첫 책으로 드라마 작가로 변신한 문유석 전 판사가 쓴 '나로 살 결심'을 우연히 발견하고 읽었다. 이 책에는 그가 판사 시절 겪은 '고문관 판사'로서 경험이 일부 서술돼 있다. 그는 남들이 기피하는 성폭력재판부에 지원했음에도 엉뚱하게 민사재판부에 배치됐는데 대법원이 물의 야기 법관은 사회적 영향이 큰 형사·행정재판부에 배치하지 않기로 한 이유 때문이었다.

세월호 칼럼도 문제였지만 당시 신문에 연재한 소설 '미스 함무라비'도 대법원엔 눈엣가시였다. 그 무렵 법원행정처는 그에 대한 인사정보에서 '소설에서 마치 고등부장 판사가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전형인 것처럼 묘사해 사법부의 신뢰에 흠집이 가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음'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이 소설엔 판사들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몽적이고 비현실적인 캐릭터가 난무했다. 나의 독해가 맞았던 것인지 모르지만 소설이 나중에 드라마로 제작되고 대만에서도 방영됐는데 대만 대법원은 2019년 여름 문유석 판사를 공식 초청해 강연을 부탁했고 법원행정처장이 직접 맞아줬다고 한다.

'나로 살 결심'에는 당시 강연이 묘사돼 있는데 대만 대법원장이 강연장 맨 앞자리에 앉아 있고 소설에서 다룬 성차별 젠더 이슈, 법원의 관료화 문제, 사법부와 시민사회의 소통 가능성 등을 대만 판사들과 함께 토론하는 심포지엄이 펼쳐졌다.

대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문 판사는 모국에선 그저 물의 야기 법관이었을 뿐이다. 언론에 한창 보도될 무렵 동료 판사들에게 당한 일은 철저한 무관심이었다. 그가 구내식당에 가지 못하고 1년 동안 샌드위치를 배달시켜 판사실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해야 했던 이유다.

물의 야기 법관은 그렇게 혼밥을 하다 법원을 떠났다. 지금 찾아보니 그의 사직 소식에 한 판사의 언론 인터뷰 내용이 눈에 띈다. "사표를 쓴 것이 놀랍지만 또 놀랍지도 않다. 문 판사는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 말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용됐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그때도, 아마도 지금도 고생하고 있을 한국의 자유로운 영혼들을 응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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