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가안보가 영토와 국민을 물리적으로 보호하는 개념이었다면 오늘날 안보의 본질은 핵심기술의 선점과 보호에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경쟁이 격화하며 전 세계가 '소리 없는 전쟁'에 돌입한 지금 우리 연구현장이 이러한 현실에 걸맞은 보안체계를 갖췄는지 냉정히 점검할 시점이다. 그동안 우리의 연구보안 제도는 구조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현행 체계가 국가 연구·개발과제를 국방·안보 중심의 '보안과제'와 그외 '일반과제'로 이분법적으로만 구분했기 때문이다.
보안과제로 지정되면 엄격한 관리가 적용되지만 일반과제로 분류되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전략기술조차 사실상 보안의 보호망 밖에 방치되는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 수백억 원 규모의 국책과제가 단지 안보와 직결된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일반과제로 분류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연구 자율성 존중이라는 명분 아래 보안관리가 느슨한 틈을 타 고도화한 해외 기술탈취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는 연구보안을 국가안보의 핵심으로 격상한 주요 기술선진국들의 행보와 대비된다.
이러한 취약한 보안인식은 국제협력 환경에서도 현실적인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 우리나라는 미국 에너지부가 관리하는 연구보안 체계상 '민감국가'로 분류됐고 이에 따라 과학기술분야의 공동연구에서 절차강화와 참여제한이라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는 단순한 외교문제를 넘어 연구보안 수준이 국제협력의 필수 신뢰기준으로 작동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결국 견고한 보안체계 없이는 글로벌 연구파트너로서 참여하기 어려운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지난 1월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가연구개발혁신법 개정안'은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번 개정은 기존 이분법적 분류체계를 넘어 국제수준에 부합하는 정교한 연구보안 체계로 나아가기 위한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정안의 핵심은 '민감과제'라는 새로운 분류체계 도입이다. 민감과제는 기존 보안과제에는 해당하지 않더라도 유출시 국가경제와 기술경쟁력에 중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포괄한다. 연구의 기획단계부터 보안등급을 세분화하고 전략적 가치가 높은 기술을 선별해 맞춤형 보호조치를 적용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이번 개정은 연구보안 정책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전담조직 설치의 근거를 신설하고 보안과제 성과의 소유권 이전절차를 강화하는 등 제도 전반을 보완했다. 이는 연구자의 윤리와 자율에만 의존한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국가 차원의 시스템에 의한 기술보호 체계로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법적 기반 마련이 곧 제도안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해당 법안의 성패는 운영의 정교함과 현장의 수용성에 달렸다. 주무부처는 연구현장의 특성을 반영한 세부 지침과 안내서를 신속히 마련해야 하고 단순한 규제강화를 넘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 지원책도 병행해야 한다. 연구자들 또한 보안을 규제가 아닌 연구성과를 지키는 '안전장치'로 인식하는 인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