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주한대사가 꼽은 지속가능한 성장 조건 셋[우보세]

권다희 기자
2026.02.26 05:5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12월부터 이번 달까지 영국과 핀란드, 스웨덴, 네덜란드, 아일랜드, 호주, 노르웨이, 덴마크, 유럽연합 등 9명의 주한대사를 만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 기사에서는 국가별 차이점을 부각했지만, 대화를 거듭할수록 메시지의 큰 줄기는 일정한 방향으로 수렴했다. 이들 국가는 탄소 감축을 계기로 만든 성장을 이미 현재진행형으로 경험하고 있었고, 그 궤도에 오르기까지 공통적으로 작동한 원리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점에서다.

일단 첫 공통점은 정책의 일관성이다. 대사들은 한목소리로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목표를 법으로 못 박았기에 장기 투자와 산업 전략이 가능했고, 기업 역시 예측 가능한 환경 속에서 움직일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법적 구속력은 기본 전제다. 정부의 정책 신호 또한 일관되고 정교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모든 국가는 첨예한 갈등을 경험했다. 이를 공론화하고 정치적으로 조정한 결과로 성과를 만들었고, 이렇게 형성된 일관된 메시지가 적게는 십수년, 길게는 수십년간 누적되며 시장의 신뢰를 쌓았다. 이것이 에너지와 탈탄소 투자로 이어졌다.

에너지 전환을 안보 문제로 인식한 것도 비슷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폭등한 에너지 가격은 '역내에서 생산되는 에너지'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에너지 의존이 곧 안보 취약성이라는 현실을 체감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됐다. 실제로 이들 국가는 지난 3~4년간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현재 이들 국가의 전력 중 재생에너지 비중은 50%대에서 90%대에 달한다. 불과 몇 년 사이 에너지 전환이 가속화된 것이다. 오는 2030년에 전력의 80~90% 이상을 재생에너지로 조달하겠다는 목표 역시 더 이상 비현실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탄소 감축과 경제 성장이 양립할 수 있다는 점을 데이터로 입증한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인터뷰 대상이 된 대부분의 국가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성장률을 유지하거나 높였다. 물론 여기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을 사회가 인정하고, 이를 전제로 정책을 설계하는 일이다. 탄소 가격제와 보조금, 세제 혜택 등 규제와 인센티브를 균형 있게 섞으면 민간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낸다. 탈탄소는 이미 각국 산업 정책의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각국 대사들이 한목소리로 언급한 "탈탄소는 혁신의 계기"라는 표현은 탄소 감축이라는 과제를 산업 재편과 기술 도약의 촉매로 전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인 셈이다.

아울러 한국 제조업 역량에 대해 그들의 기대감도 눈길을 끌었다. 에너지 전환에는 제조 기반과 공급망이 필수적이지만, 단기간에 구축하기는 쉽지 않은데 한국이 그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에너지 전환과 탈탄소 성장은 안보와 산업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제조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방향을 분명히 잡고 속도를 내는 일이다.

권다희 산업1부 차장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