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고유가 상황에서 대규모 '돈뿌리기'가 이뤄진다. 3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이른바 '전쟁추경' 얘기다. 정부는 고유가·고물가로 서민층이 이중 부담을 지고 있다며 국민 70%에게 1인당 최대 6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4조8000억원이 소요된다.
이제 현금성 지원은 선거에 부수되는 이벤트로 간주해도 될 듯하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이 결정된 것이 시작이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코로나19를 명분으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소상공인 손실을 이유로 지원금이 풀렸다. 더불어민주당은 2024년 총선 때와 지난해 대선 때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핵심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번에도 '전쟁'은 돈뿌리기를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지역화폐로 지급하겠다는 것은 받은 돈으로 저축을 하지 말고 소비를 하라는 의미다. 소비가 늘어나면 물가와 환율이 상승한다는 건 상식이다. 이미 유가 쇼크가 물가에 반영되기 시작했으며 원/달러 환율은 17년 만에 1530원선을 넘어섰다. 고유가·고물가 피해를 지원하겠다면서 물가와 환율을 높이는 정책을 쓰겠다는 발상은 모순이다. 정작 석유를 덜 쓰게 하는 전기차 보조금은 이번 추경에서 빠진 것도 위기 극복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정부는 추경 재원으로 증시, 반도체 경기 호황 등에 따른 초과세수 25조2000억원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초과세수는 법인세가 14조8000억원으로 60%를 차지한다. 반도체를 제외한 산업 대부분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이른바 '반도체머니'가 재원으로 활용된 셈이다.
2023년과 2024년에 경험했듯 반도체 사이클이 하락세로 접어든다면 세수가 급감해 바로 재정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현재 세수가 늘었다면 부채를 최대한 줄여놓는 게 재정 위기 상황을 대비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선거 시기일수록 재정건전성과 화폐가치 안정이라는 원칙을 갖고 현금지원의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