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에너지를 아끼는 나라가 끝내 강해진다

최지웅 한국석유공사 정보분석팀 차장
2026.04.08 05:00

우리는 에너지를 너무 익숙하게 사용한다. 전등이 켜지고, 자동차가 움직이고, 공장이 돌아가는 일은 너무나 당연해서 마치 그 모든 것이 대가 없이 주어진 자연의 질서인 것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그 비용은 가볍지 않다. 사실 에너지는 국가가 가장 큰 비용을 치르는 영역이다. 2024년 기준 우리나라 석유·가스 수입액은 1397억 달러(약 200조 원)에 달했다. 국가 전체 수입액의 22%, GDP(국내총생산)의 약 8%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비용의 무게를 충분히 실감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특히 우리나라는 석유와 가스 같은 주요 에너지원을 해외에서 들여온다. 그 의존 구조에서 우리의 일상뿐 아니라, 산업의 중추인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조선 같은 산업이 움직인다. 한마디로 우리는 에너지를 거의 만들어내지 못하면서도 에너지 없이는 버틸 수 없는 나라다. 이 불균형은 평상시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흔들리고 공급망에 충격이 닥치는 순간, 취약성은 매우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역사는 이미 그것을 보여줬다.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는 석유라는 자원이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경제와 안보를 흔드는 전략 자산임을 증명했다. 오일쇼크의 충격 속에서 우리나라는 아랍권과 우호 관계를 위해 1973년 친아랍성명을 발표했고, 1977년에는 서울 강남 한복판의 이름을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만큼 에너지 자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지금은 잊혀진 일이고 에너지 위기의 충격은 남의 일인 듯 느껴져 왔지만, 위기는 잊힐 때 다시 자라난다.

과거나 지금이나 원유 가격의 급등은 경제 성장률과 물가, 기업의 수익성과 가계의 부담, 심지어 외교와 군사 전략까지 좌우하는 변수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이 쓰는 능력이 아니다. 오히려 덜 쓰면서도 같은 성과를 내는 힘이다.

에너지 절약은 단순히 전기요금을 아끼자는 구호가 아니다. 같은 산업 생산을 유지하면서도 더 적은 에너지를 쓰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같은 생활수준을 누리면서도 효율적 소비로 버티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은 효율의 문제이자 체질의 문제다.

에너지를 덜 쓰는 나라는 위기 때 덜 흔들린다. 그래서 에너지 절약은 경쟁력의 다른 표현이다. 특히 우리처럼 에너지를 수입하는 현실에서 에너지를 과도하게 쓴다는 것은 더 큰 대외 의존을 낳는다. 지나친 의존은 종속과 제약을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절약의 가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욱이 에너지를 덜 쓴다는 것은 경제적 의미만 갖지 않는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 부담을 낮추는 길이기도 하다.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안보는 서로 다른 과제가 아니다. 효율을 높이고 낭비를 줄이는 일은 두 목표를 동시에 향하는 공통의 해법이다. 그래서 에너지 절약은 낡은 구호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에 가장 필요한 전략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에너지를 보는 시선의 변화다. 전등 하나, 휘발유 한 방울, 전력 한 단위가 모두 나라 밖에서 비싼 값을 치르고 들어온 것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 인식이 쌓여야 절약은 불편이 아니라 책임이 되고, 인내가 아니라 경쟁력이 된다. 일상에서 가장 작은 것부터 아껴 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애국이다. 그리고 불안정한 시대를 건너는 나라가 끝내 붙들어야 할 가장 분명한 원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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