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택의 딥포인트]에너지가 민생이다

강기택 논설위원
2026.04.16 07:37

에너지가 경제와 민생을 좌우

미·중 자국에 맞춘 정책설계

LNG 등 특정연료 의존 위험

이상 좇기보다 실사구시 필요

에너지는 민생이다. 이란 사태가 보여주듯 에너지 가격이 튀면 주유소 기름값뿐 아니라 쓰레기봉투, 포장재, 외식 물가까지 줄줄이 뛴다.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하는 한국 같은 제조업 국가는 공장 가동 축소와 투자 지연, 고용 위축 등 경제 전반이 구조적 충격에 노출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교전 당사국이 아닌 나라 중 한국만큼 타격을 받은 곳은 없다"고 지적한 이유다.

에너지는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야 하는 영역이다. 석유와 LNG를 자급자족하는 미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처지는 다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LNG 최대 수출국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에너지 패권을 내걸고 석유·가스·석탄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도 '깨끗한 기저전원'으로 키우고 있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망을 깐 뒤 공장과 데이터센터를 얹는다는 포석이다.

반면 석유·LNG 수입국인 중국은 막대한 달러를 에너지 구입에 소모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년 산둥성 승리유전을 찾아 "제조업 대국이 실물경제를 키우려면 에너지의 밥그릇(能源飯碗)을 반드시 자기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이후에도 "에너지는 경제·사회 발전의 중요한 물질적 기반이자 동력이며, 국계민생(國計民生)과 국가안보에 직결된다"면서 거듭 에너지 자립을 강조해 왔다.

그런 까닭에 중국은 청정·저탄소를 내세우면서도 '탈원전·탈석탄'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지난해 4월 기준 가동·건설·허가 단계의 원전이 102기, 1.13억kW로 설비 규모 세계 1위다. 파키스탄·아르헨티나 등에 원전을 수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 승인·착공된 석탄발전 프로젝트는 100기 안팎으로 전 세계 신규 석탄발전의 대부분을 중국이 차지한다. 석탄이 풍부한데다 미국·EU 환경 규제를 피할 만큼 기술 수준도 끌어올렸다.

대척점에 선 국가가 독일이다. 2023년 마지막 원전 3기를 멈추며 '원전 제로'를 선언했고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꾀했지만, 러·우 전쟁으로 가스 공급망이 흔들리자 취약성이 드러났다. 바람과 해가 동시에 부족한 '둥켈플라우테(암흑정체)' 때마다 프랑스·북유럽에서 전기를 비싼 값에 사와야 했다. 값비싸고 불안정한 전기는 화학·철강·자동차 등 기간산업의 '탈독일화'와 성장 둔화를 야기했다. 이상을 좇은 친환경 정책의 후폭풍이다.

일본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원전 비중을 낮추고 LNG와 석탄의 의존도를 높였다. 러·우 전쟁 이후 LNG 조달 불확실성이 커지자 원전 재가동·수명 연장으로 선회했다. 2040년까지 원전 비중을 현재 약 8.5%에서 20%로 높이고 재생에너지는 40~50%까지 확대하되 LNG는 과도기적 가교 연료로 한정했다. 한국보다 먼저 탈원전 프레임에서 빠져나왔다.

한국은 '탈원전·탈석탄' 구호 아래 LNG와 재생에너지 확대에 집중했다. LNG 가격 급등 등으로 한전과 가스공사가 천문학적 적자를 냈고 수년간 산업용 전기요금이 70% 넘게 올랐다. 이는 기업의 원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가계의 실질소득을 압박하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 됐다. 최근 카타르의 LNG 공급 불가항력 통보는 또 하나의 경고등인 셈이다. 뒤늦게 원전 이용률을 높이고 석탄발전 상한을 풀어 대응하고 있지만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고육지책이다.

이란 사태는 산업 구조와 자원 확보 여부, 지정학 위치를 따져 실사구시적 '에너지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준다. 제조업의 지속 가능성과 AI 시대의 생존을 동시에 도모하려면 무엇보다 24시간 중단 없는 고품질 기저전원을 갖추는 일이 우선이다. 무탄소 기저전원인 원전을 중심축으로 삼고, 고효율 청정석탄·LNG·재생에너지를 안보와 비용의 관점에서 정교하게 조합해야 한다. 에너지가 곧 밥그릇이자 민생이기 때문이다.

강기택의,딥포인트,컬러컷 /사진=임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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