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지금 '홀리스틱 거버넌스'인가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6.04.21 06:00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우리는 지금 '파편화의 함정(Fragmentation Trap)'에 빠진 시대를 살고 있다. 파편화의 함정은 주로 경제학, 경영학, 그리고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언급되는 개념으로, 국가나 기업이 처음에는 '전문성'이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산된 구조를 택하지만,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전체적인 효율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기업은 당장의 분기 실적에 매몰되어 장기적 성장 동력을 놓치고, 정부 부처는 각자의 예산과 규제라는 칸막이 속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결국 비용은 늘고 의도했던 시너지는 사라진다.

그러나 경기 침체, 고용 위기, 연금 고갈,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수많은 난제들은 결코 한 조각의 퍼즐만으로 풀 수 없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에 국가와 기업의 체질을 개선할 해법으로 '홀리스틱 거버넌스(Holistic Governance)'가 부상하고 있다. 홀리스틱 거버넌스는 부분적·형식적인 요소보다는, 전체적·통합적 관점에서 조직이나 시스템의 모든 측면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칸막이 없는 통합 행정'이다. 정부나 기업이 문제를 해결할 때 각 부서가 자기 업무만 챙기는 '파편화'된 방식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를 위해 모든 부서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인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이 개념을 요리에 비유하곤 한다. 전통적인 방식이 샐러드라면, 홀리스틱 거버넌스는 빵과 같다는 것이다. 샐러드는 여러 재료(부서)가 한 그릇에 담겨 있지만, 채소와 각종 양념들이 각각의 형태를 유지한다. 협력은 하지만 부서 간의 경계(칸막이)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빵은 밀가루, 우유, 달걀이 섞여 원재료와는 전혀 새로운 형태가 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어느 부서 업무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빠르게 효율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면 된다는 것이다.

홀리스틱은 그리스어 '홀로스(Holos)'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전체론(Holism)을 바탕에 둔다. 또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 규칙, 시스템 전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거버넌스'란 표현을 사용한다. 홀리스틱 거버넌스는 1990년대 중반, 전통적인 관료제의 폐해인 '부처 이기주의(Silo Effect)'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다. 기본적인 뿌리는 1997년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가 효율적 의사결정을 위해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자고 제안한 '연계 정부(Joined-up Government)'에 있다. 산업화 시대의 산물인 수직적·분절적 행정 체계로는 실업, 범죄, 빈곤 등 여러 부처에 걸쳐 있는 '고질적 난제(Wicked Problems)'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 하트퍼드대 교수인 데이비드 애슈워스가 학술적으로 체계화하며 홀리스틱 거버넌스라는 개념을 확립했다.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책의 기획부터 집행, 성과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전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화학적 결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홀리스틱 거버넌스는 통합(Integration)과 조정(Coordination)을 강조한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상호 연결되어 있어, 한 부분만 고치면 다른 부분에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이런 상호의존성(Interconnectedness)을 인정하고, 장기적·포괄적 관점에서 더 나은 결과를 추구한다. 결과적으로 조직의 투명성, 책임성, 혁신 능력이 강화되고,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해진다.

최근 이 개념이 공공 영역을 넘어 민간 자본시장으로 급격히 전이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규모의 연기금인 일본의 공적연금운용기금(GPIF, Government Pension Investment Fund)과 노르웨이의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관리청(NBIM, Norges Bank Investment Management)은 홀리스틱 거버넌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NBIM이 최근 5년(2019-2023) 평균 수익률 9%대로 세계 최고의 실적을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 세계 9000여 개 기업에 대한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로서의 책임감이 있었다. "지구가 망하면 우리 포트폴리오도 망한다"는 논리로 투자한 개별 기업의 단기 수익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시장 전체의 건전성과 지배구조의 표준을 바로 세우는 데 집중한 것이다. GPIF 역시 증권거래소와 손잡고 PBR 1배 미만 기업들을 압박하며 시장 전체의 체질을 개선하는 홀리스틱 접근법으로 니케이 지수의 신고가 행진을 이끌어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국민연금 역시 투자자를 넘어 '거버넌스 설계자'로 진화하고 있다. 기금 고갈이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 가치를 시스템적으로 제고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업 현장에서도 홀리스틱 거버넌스는 '착한 기업'이 되는 차원을 넘어, '기업 가치(Valuation)와 직결된 구조적 결함'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인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의 지배구조는 홀리스틱 거버넌스가 어떻게 기업의 장기 생존을 담보하는지 보여준다. '노보 노디스크 재단'이 지주사인 '노보 홀딩스'를 통해 기업을 지배한다. 수익의 상당 부분은 다시 사회적 연구와 자선 활동으로 환원된다. 단기적인 분기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인류의 건강 증진'이라는 본질적 목표에 집중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이는 결국 비만치료제(위고비 등) 개발 같은 장기 혁신으로 이어졌고, '사회적 가치가 곧 재무적 성공'임을 증명했다.

현대차그룹은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고, 이사회의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홀리스틱 거버넌스를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사외이사 후보 추천 위원회의 독립성을 높이고, 글로벌 거버넌스 전문가를 영입했다. 또한, '총주주환원율(TSR)' 개념을 도입하여 주주 가치를 경영 전략의 핵심에 통합했다. 재무 성과와 주주 환원, 그리고 지배구조 개선을 별개의 과제가 아닌 '기업 밸류업'이라는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시장과 소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메리츠금융지주의 '원-메리츠'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홀리스틱 거버넌스의 정수로 꼽히는 가장 극적인 사례다. 메리츠금융지주는 자회사(화재, 증권)를 합병하여 단일 상장사 체제로 전환했다. 한국 특유의 '쪼개기 상장' 관행을 정반대로 거스른 행보다. 계열사 간의 파편화된 자본 운용을 하나로 통합하여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연결 손익의 50%를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거버넌스 통합이 어떻게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지 증명했다.

또한 경영권 분쟁 과정에 있는 고려아연은 홀리스틱 거버넌스 관점에서 볼 때 '국가 기간산업의 기술력 보호'와 '주주 가치 제고'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과거에는 '경영권 방어'가 최우선이었다면, 이제는 기업 가치를 중심으로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지배주주 중심의 파편화된 의사결정이 기업 가치를 깎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경쟁력, 글로벌 공급망 내 위상, 장기 전략의 실행 역량까지 고려해야 한다. 특히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경영 성과와 리스크 관리 역량을 동일한 기준으로 비교·평가하여 시장의 신뢰를 얻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시스템적 의사결정 체계의 확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홀리스틱 거버넌스의 핵심은 이사회가 경영진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감시자'로 작동하는 것이다. 거버넌스는 '규제'가 아니라 기업의 '프리미엄'을 결정하는 요소다. 자본 효율성이 높은 기업(ROE가 높은 기업) 뒤에는 반드시 투명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제 파편화된 개별 이익의 늪에서 벗어나, 시스템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해야 한다. 거버넌스가 바로 서야 자본이 모이고, 자본이 모여야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능해진다. 대한민국 부의 지도는 지금, 홀리스틱 거버넌스라는 정교한 펜 끝에서 다시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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