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窓]영화 '아리랑' 100년, 한(恨)에서 흥(興)으로

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한국영화학회장
2026.05.08 02:00

일제 때 나운규 '아리랑', 조선의 한 담겨
BTS와 팬이 부른 '아리랑'엔 기쁨과 희망
K-팝에 녹아든 세계시민 정서로 재창조

1926년, 서울 단성사의 스크린 위로 800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흑백 무성영화 '아리랑'이 상영됐다. 3·1운동의 고문 후유증으로 미쳐버린 청년 '영진'의 이야기였다. 일제의 눈을 피해 숨죽이며 영화를 보던 조선의 관객들은 흐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실성한 영진이 바로 자신이며, 식민지 조선의 초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은 식민지 조선의 집단 정동(情動)을 점화했다.

2026년, 서울 광화문 광장의 무대 위로 3년 9개월 만에 방탄소년단이 돌아왔다. 경복궁을 배경으로, 광화문 월대를 무대로 아리랑을 불렀다. 세계에서 모여든 4만 명의 관객이 아리랑을 함께 불렀다. 100년 만의 아리랑은 기쁨과 희망이 섞인 인류 보편의 멜로디로 세계시민의 정동을 파고드는 노래가 되었다.

아리랑은 본래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정선, 진도, 밀양, 상주 등……. 저마다의 삶과 정서가 녹아든 수십 가지 변주가 있다. 민요 선율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는 후렴을 공유하지만, 가사와 음정은 천차만별이다. 아리랑은 이런 열린 구조 때문에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노래가 되었다. 아리랑은 정본(定本)이 없는, 거대한 하나의 이데아이자 각각의 노래다. 하나이되 여럿이고, 여럿이되 하나인 독특한 역설의 양상이 담겨있다.

슬픔, 저항, 기쁨, 회한을 모두 담을 수 있는 노래. 나운규는 바로 이 지점을 포착했다. 그는 옛 민요를 편곡해 영화의 주제가를 만들었다. 이 주제가가 바로 우리가 오늘날 흥얼거리는 아리랑이 되었다. 일제 당국은 영화가 개봉하자 선전물 1만 매를 압수하고,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 가고, 동냥의 쪽박이 웬일인가"라는 가사를 삭제했다. 아리랑은 곧바로 저항의 언어가 되었다.

아리랑은 또 이주와 이산(離散)의 노래였다. 간도, 연해주, 하와이, 일본으로 흩어진 한인들은 낯선 땅에서 아리랑을 목 놓아 불렀다. 아리랑은 한의 정서를 품었다. 한은 실현되지 못한 욕망의 결핍이다. 한은 정으로 이어졌다. 정은 결핍을 공유한 주체 사이에 일어나는 정서의 상호 작용이다. 정은 흥으로 이어졌다. 정서의 유대는 마침내 유쾌한 정동으로 폭발한다. 아리랑은 100년의 세월 동안 이런 전환을 거듭하며 새로워졌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앨범의 이름을 '아리랑'으로 정한 이유에 대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지금도 계속 재정의되고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 흐름의 일부가 되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다. 아리랑은 이제 '우리다운' 한과 정의 민요이자 '역동하는' 흥을 발산하는 '재미'의 기호가 되었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잿빛 유물이 아니다. 아리랑은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로 다시 쓰이면서 생명력을 키워왔다. 나운규는 민요를 영화로 바꾸었고, 독립 운동가는 노래를 저항의 신호로 삼았고, 해외 동포는 향수의 정서를 품었고, 방탄소년단은 21세기 K-팝의 정체성으로 끌어냈다. 저마다의 진솔한 서사가 보편적 정서와 만날 때 발생하는 폭발적인 힘의 원천 속에 한‧정‧흥이라는 정동의 자유 자재하는 상호 전환이 담겨 있다.

오는 16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아리랑의 역사적 맥락과 동시대적 전환에 관한 논의가 펼쳐진다. 우리에게는 적어도 두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잃어버린 나운규의 필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와 민간이 공동으로 체계적인 발굴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 필름 아카이브 네트워크를 통해 가능성을 찾아가야 한다. 둘째, 아리랑을 고정 불변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언어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 민요, 영화, K-팝을 이어온 과정처럼, 세계시민과 함께 하는 정동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오늘날 K-팝이 만들어가야 할 동시대적 과제다.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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