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생명의 골든타임, '대피'로 지킨다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차관급)
2026.05.21 05:30
김광용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사진제공=행정안전부

"이런 비는 내 평생 처음 봅니다."

이제는 이런 말이 전혀 생소하게 들리지 않는다. 시간당 100㎜를 넘는 극한 호우가 2024년 16회, 2025년 15회 발생했다. 특히 지난해 7월에는 가평, 광주, 서산, 산청 등에서 짧은 시간에 비가 집중된 기록적인 폭우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바야흐로 이상기후가 뉴노멀이 돼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하천 정비와 배수시설 확충 등 재해예방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그러나 단시간에 집중되는 극한 호우 앞에서는 이것만으로 한계가 있다. 집중호우, 산사태, 지하공간 침수와 같은 재난은 수십 분, 짧게는 몇 분 사이 상황이 급변한다. 재난을 예측하기 어려워질수록 미리 대비하고 대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현장의 경험은 이를 보여준다. 2024년 7월 경북 영양군과 안동시에서는 마을 이장과 주민대피지원단, 소방·경찰이 협력해 급류와 침수 위험 속에서도 주민을 신속히 대피시켜 인명피해를 막았다. 생명을 지키는 힘은 현장의 신속한 판단과 공동체의 실행력, 기관 간 협력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피를 늦지 않게 결정하는 것이다. 재난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전개되며, 위험이 눈앞에 닥친 뒤에는 안전한 이동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의 지형과 여건을 반영한 대피 판단기준을 마련하고, 현장 책임자가 즉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특히 고령자와 장애인 등 혼자 대피하기 어려운 주민들은 더 큰 위험에 놓인다. 지방정부가 사전에 '우선대피대상자'를 파악하고, 누가 이들을 지원할 것인지까지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대피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끝까지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을 체계화한 것이 '주민대피지원단'이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마을 이장과 통장, 지역자율방재단 등으로 구성되며 현재 전국 모든 시·군·구 단위에서 조직이 완료됐다. 지난해보다 대상자와 지원 인력 모두 크게 늘었다.

행정안전부도 읍·면·동 단위 주민대피체계가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확대하고, 민방위 경보 사이렌과 재난 문자도 개편했다. 특히 대규모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수신 거부가 불가능한 '위급재난 문자'와 '귀를 울리는 경고음'으로 긴박함을 즉시 알릴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준비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위험을 알고도 움직이지 않으면 대피는 이루어질 수 없다. 대피는 '알리는 것'을 넘어 '움직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혜로운 이는 위태로운 담장 아래 서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재난 앞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한발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것, 그것이 곧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다가오는 여름철, 재난으로부터 생명을 지키는 골든타임은 '주민 대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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