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현실로부터 길어 올린 이미지들로 허구를 직조해 낸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정교하게 발달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카메라로 포착된 물리적 실재를 필요로 하는 영상예술은 그 DNA에 현실과의 완강한 끈이 낙인처럼 새겨져 있다. 아무리 허무맹랑한 판타지라 할지라도, 카메라가 포착한 순간의 물리적 현실은 영화적 세계를 우리의 현실 세계와 끊임없이 교차시킨다. 스크린에 새겨진 현실의 흔적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인지, 오늘날 미디어 콘텐츠를 둘러싼 담론은 언제나 현실과 허구 사이의 팽팽한 긴장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영상예술의 역사에서 리얼리즘과 그 기술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짜 같아서 현실과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세계를 꿈꿔왔다. 그러한 '완전영화'(Total Cinema)'의 상상은 어쩌면 영화 '트루먼 쇼'나 '매트릭스'가 설정하는 세계와 유사하다. 알고 보니 주인공의 일상이 거대한 세트 속 리얼리티 쇼였다던가,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모두 컴퓨터가 만들어낸 가상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은, 현실을 그대로 매개하는 카메라가 어떻게 가장 거침없는 판타지를 포용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편, 아무리 자유로운 상상이라도 화면 속 세계가 순수한 허구로만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제약도 있다. 특히 그 상상이 역사의 일부를 끌어 안고 있을 때면 더더욱.
보통의 역사드라마가 역사나 그에 기반한 상상을 과거를 배경으로 다루는데, 요즘 한국 드라마는 현대를 배경으로 역사적인 요소를 자유롭게 녹여 이야기를 풀곤 한다. 예를 들면 '멋진 신세계'는 조선의 장희빈이 현대에 환생하여 새로이 운명을 개척하는 이야기다. 최근 논란이 된 '21세기 대군부인'은 현재의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는 설정을 통해서 과거 우리나라의 군주제 전통을 소환한다. 세계적으로 어필하는 한국적인 것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활용하면서도, 직접 역사를 다루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상상을 펼칠 수 있는 전략인 듯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판타지라고 해도 역사적 설정이 등장하면 완전한 허구로 인식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은 몇몇 장면들이 중국 문화를 반영하거나 동북아공정설에 부합된다는 점에서 크게 비판을 받았으며, 제작진과 출연 배우들이 사과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단 한 번도 입헌군주제였던 적이 없다. 그와 같은 설정은 드라마가 진짜 역사물이 아니라 역사물을 모방한 판타지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한다. 애초에 가상의 판타지물인 드라마에 '역사적 고증'의 잣대를 들이대며 비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술적 재현에 현실이라는 잣대를 강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문화 예술은 자연스런 사실만을 재경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중의 날 선 반응을 근거없는 엄숙주의로만 치부해선 안 된다. '역사 왜곡'이라는 잣대를 단순히 '사실(fact)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필요도 없다. 대중은 드라마 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실제 역사와 동일시해서 불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상이 호출하는 시대적 무게나 갈등의 본질을 거세한 채, 가벼운 조미료처럼 역사를 소비하는 행태에 대한 불만일 확률이 크지 않을까? 즉 편한대로 가져다 쓰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21세기 대군부인'이 정말 특정 역사 인식을 반영하려 했을 리는 없다. 오히려 우리 문화의 매력과 한류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으로 역사적 기호를 포함한 판타지의 허용범위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이 잘못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논쟁을 통해 드러난 대중의 문화적 역량이다. 허구와 진실이, 과거와 현재의 역사가 공존하는 이 상상력의 경계선 위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또 무엇을 지켜야 할 지 모두가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