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칼럼은 실기했다. 의도한 실기다. 지난 3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이 공연을 한 직후 썼어야 시의성을 인정받았을 것이다. 병역을 마치고 3년 만에 완전체로 복귀해 대중 앞에 선 첫 무대였다. 새출발하는 의미에 집중해야 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됐다.
광장에 나온 BTS가 의아했다. 광장은 축제의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집단성이 강해지기 쉬운 장소다. 민주주의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힘을 가장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같은 공연이라도 광장에서 열리면 단순한 문화 이벤트의 의미를 넘어선다.
1970년대와 80년대를 산 세대에게 광장은 여의도광장이었다. 각종 반공 집회와 선전이 이뤄졌고 정치적 동원에 의해 오염됐다. 전두환 정권이 급조한 관제 축제인 국풍81의 공간이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 여의도광장이 공원으로 변하자 광화문 앞이 광장이 됐다. 한일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은 광장의 가능성을 새로 발견한 계기였다. 2002년 효순·미선 추모대회, 2008년 광우병 시위, 2016년 탄핵 집회를 거치면서 광화문광장은 저항의 공간이 되었다. 촛불을 밝히고 아침이슬을 부르면 청와대 뒷산에 오른 대통령의 귀에 들리기 때문에 정치적 구호를 외치기엔 최적의 장소다.
하지만 군중을 동원해 힘을 과시하는 공간이라는 점은 여의도광장 때와 다르지 않다. 목소리의 크기가 곧 메시지인 것도 여전하다. 민주노총과 태극기부대가 공간을 공유하지만 화합과는 거리가 멀다. 2009년 세종대왕 동상 건립, 2010년 광화문 개축, 2023년 월대 복원 등을 통해 광화문광장은 민족주의 색채가 짙어졌다.
BTS의 성공 배경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수평적 소통'이 있다. 집단성과 상징성이 전면에 나서는 '광장'이 어색한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어느 국가 대통령의 요청으로 BTS가 대통령궁 광장에 서고, 해당 대통령은 우리 대통령에게 추가 공연을 요청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도 안타까움이 앞섰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목적이 드러난다.
BTS가 '너 자신을 사랑하라'라는 보편적인 메시지 대신 '아리랑'과 '김구'를 키워드로 광화문광장에 섰을 때 시선은 전세계 팬들이 아닌 자국민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한국의 미학을 보여주는 한복이나 한글과는 결이 다르다. 문화 코드를 넘어 역사와 공동체 정체성을 불러낸다. K-컬처의 성장은 '로컬성'과 '보편성'의 결합 위에서 이루어져 왔지만 문제는 균형이다. 메시지가 정체성에 집중된다면 보편적 공감대가 약해질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방탄소년단의 컴백 비하인드를 담은 다큐멘터리 'BTS: 더 리턴'에 따르면 멤버들도 앨범에 '아리랑'을 넣는 것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그런데 방시혁 의장이 직접 '아리랑' 활용할 것을 제안하고 글로벌 무대에서의 상징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BTS 공연은 광화문광장이 문화의 광장으로 탈바꿈할 기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통제됐다. 자유롭게 흘러야 할 축제의 에너지보다 관리된 동선과 기획된 메시지가 앞서면서 귀중한 기회를 놓쳤다.
BTS는 한국인에게 자부심의 원천이지만 자부심 자체가 메시지가 되면 독이 된다. 기울어진 자부심이 보편적 매력을 해친다는 사실은 홍콩영화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홍콩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웠다. 그런 토양에서 '중경삼림'이 만들어졌지만 홍콩 반환 이후 몰락의 길을 걸었다. 국가주의적 문법이 강해질수록 감수성은 옅어졌다. 체제 찬양 일색의 영화들은 중국 밖에서는 어떤 사람도 찾지 않는다. 경제는 풍요해졌지만 문화는 빈곤해졌다.
K-컬처는 산업적으로 보자면 내수용보다 수출 산업에 가깝다. 침공하고 지배하려 하지 말고 소비되고 스며들게 해야 한다. 한류가 보편성을 상실하고 일방통행이 되면 더이상 문화가 아니라 선전이 된다. 국경을 넘는 영향력은 광장 안에 갇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