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붓다라 부르는 고타마 싯다르타는 올해로 2570년전 태어난 사람이다. 붓다가 되거나 전륜성왕이 될 것이라는 한 선인의 예언에 영향받은 그의 아버지 정반왕은 아들의 출가를 막기위해 성 외부와 격리시켜 좋은 것만을 경험하며 자라게 한다. 하지만 장성할 때 까지 노병사의 일상적 고통을 목격하지 못했던 고타마는 처음 그것을 대면하고는 큰 충격을 받게된다. 결국 출가를 막기위해 격리했던 아버지의 배려가 한 원인이 돼 고타마는 출가하게 된다.
최근 교육현장에서 교육자가 토로하는 여러 고충들을 보면서 고타마의 출가를 떠 올리게 된다. 현재 주류 교육자들은 군부 독재시절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강압적인 분위기의 교육환경에서 성장했다. 두발단속, 교련수업, 방공교육, 소지품검사, 체벌, 구타, 조기청소, 반 강제적 모금 등을 경험한 그들은 교육환경의 민주화와 자유화에 한 세대를 바쳐왔다. 더불어 아동 청소년의 권익 향상에 힘써왔고 많은 환경적 변화를 주도해 과거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로운 교육환경이 조성 된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곳 어느 때에나 있기 마련이다. 바뀐 것은 과거에 비하면 장점으로 비치지만 또 다른 문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교육은 어렵다. 인권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작 보호하고자 한 대상이 인권의 중요성을 인지 못했을때는 어떻게 교육을 해야할까. 교육자의 고민과 번민이 깊어지는 부분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 하지만 인간성을 말살하는 표현들도 보호해야 하는가? 이런 복잡한 문제들은 AI(인공지능)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들이 아닐까 한다.
한 영화의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대사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대사다. 욕망은 햇빛을 좇는 덩굴 식물처럼 변화무쌍하게 상황마다 변칙적으로 나아간다. 아동의 인권은 보호해야 한다. 동시에 인격을 형성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과 상황에 대한 경험도 해야하고, 실패와 좌절 또한 경험해야 한다. 마치 백신접종을 맞는 것과 같다. 다양한 상황과 경험이 교육인 것이다. 좋은 것만 경험시킨다면 그것은 무균실의 실험용 쥐와 다를 바 없다. 무균실에서 성장한 쥐가 밖으로 나오면 죽는다. 면역학에서도 유아기 때 다양한 박테리아를 경험해야 건강한 면역체계를 갖춘다고 한다.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고, 고운 놈 매 한대 더 때린다.'는 말은 자녀를 교육하는 마음 자세와 배려의 역설을 전해주는 지혜로운 속담이다. 물론 인간 사회의 집단지성은 느린 듯 해도 적절한 답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은 아닐지라도 끊임없이 답을 찾는 그 자체가 답이기도 하다. 과학과 의학의 흑역사를 보면 무지와 오해, 잘못된 믿음들과 그것에 의해 빈번히 일어났던 덧없는 희생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에 경악하지만 인류 전체의 시선에서 보면 그런 실수와 희생들을 바탕으로 오늘날 인류가 살아가고 있다. 그런 실수와 희생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하나는 전체를 전체는 하나를 위해 살아간다.
얼마 전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 때 흥미로운 모습이 보였다. 조계사 앞마당에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여야의 정치인들과 많은 불자들이 모여서 행사를 진행하다가 조계종 종정 성파스님의 법문이 있었는데 예정된 시간을 초과하자 옆에서 법문을 그만 끝내주시라고 말을 했던 모양이다. 스님이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느닷없이 법문의 끝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울린다. 조계종 최고 어른이라는 권위도 무색케 한 목탁 소리에 머슥 할만도 했는데 '아이고 내가 이리 눈치도 없는 늙은이라'며 우스갯소리로 넘기는 여유에 상황은 대중의 웃음으로 마무리 되었다. 혹자는 진행의 실수를 나무라지만 혹자는 종정스님의 권위 없는 권위를 배우고 또 다른이는 장난끼 섞인 목탁소리에 폭소를 터뜨렸다. 긴 시간의 설법에 하품하다가 하늘의 뜬 구름에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