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기업 연수원이 중요한 이유

김화진 미시간대 석좌교수
2026.06.08 17:05
김화진 미시간대 석좌교수

필자는 여러 나라 학교의 교수, 학생, 그리고 줄잡아 100개가 넘는 국내 기업, 기관의 임직원들에게 강의, 강연을 했다. 여기에는 대형병원 세 곳의 의료진도 포함되는데 흰 가운을 입은 선생님들이 가득 찬 곳에서 강의한 기억은 특별하다. 회사 본사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나 임원교육도 있었고 교육원, 연수원에서 초청을 받기도 한다. 변호사협회 같은 협회 초청도 있었고 사법연수원에서 군법무관 교육도 했는데 법무관들이 완벽하게 줄을 맞추어서 책상 위에 필기도구 통을 놓아두고 그 안에 칫솔도 들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회사 중견간부나 신입사원 교육도 많다. 가장 기억에 남는 회사는 신한은행이다. 경기도 기흥의 연수원에 도착해서 강의실을 찾아가는데 필자의 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 신입사원들이 긴 줄을 만들어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줄을 가로질러 지나가야 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직원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표정과 몸짓이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장 기분 좋은 기억 중 하나로 남았다. 강의실로 향했고 그날 강의는 지점장 40명이 대상이었다. 끝나고 대표가 모두 같이 준비한 페라가모 넥타이를 선물로 주었다. 돈을 가장 많이 만지는 은행 지점장들 선물이니 꼭 하고 다니라는 말도 들었다. 그 넥타이는 아직도 잘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신한은행 이사회 강연에 그 넥타이를 매고 갔다.

최근 가장 인상적인 기업연수원은 현대차의 HMG경영연구원 인재개발원이었다. 팀장 승진자들을 만났다. 교육 장소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용인의 마북캠퍼스였다. 법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고 그 너머가 삼성의 레이크사이드CC다. 마북연구단지에는 현대모비스 양궁단 훈련장도 있다. 연수는 서울이나 지방에 있는 근무지에서 일하다가 와서 잠깐 강연을 듣는 것이 아니고 며칠씩 내려와서 머무르면서 집중적으로 학습을 한다.

HMG경영연구원 홈페이지를 열면 '미지의 성장 경로(Path) 개척을 위한 동적 내비게이터(Dynamic Navigation)가 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만나게 된다. 자동차회사 연구원, 연수원답다. 6개 부서 중 하나인 인재개발원은 '변화 선점을 위한 그룹 고유의 리더십 기본기 강화, 게임체인저 시대를 이끌 차세대 경영자 육성, 그룹 HRD 역량 강화를 통한 조직의 변화실행력 제고' 등을 세 가지 업무 목표로 제시해 놓았다. HMG경영연구원은 영문 이름이 Business Intelligence Institute라고 되어 있는데 기업, 학교, 국가기관의 느낌이 같이 떠오른다.

어떤 기업의 연수원이나 마찬가지지만 인재개발원은 준비가 철저하다.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여유 있는 학교와는 달리 회사는 잘 정리되고 사전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강사에게 기대하고 요청하는 콘텐츠가 분명하다. 특히 임원급 교육은 상당히 '비싼 시간'을 투입하는 셈이어서 준비하는 팀은 긴장하면서 매사 철저하게 점검한다. HMG의 인재개발원도 다르지 않았다. 강의 때마다 잘 준비되고, 진행되고, 마무리되었다.

HMG 인재개발원이 특히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강사가 전달하려는 콘텐츠와 메시지가 현재의 기업경영 상황, 산업 동향 등에 맞춤형이 되려면 어떻게 준비되어야 좋을지를 강사와 미리 협의해서 연구하는 모습을 보아서다. 강의 제목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의를 하는 강사는 그냥 그 한 날 정해진 시간에 가져간 얘기를 하고 오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논문 준비하듯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교육담당자들의 생각을 알면 자연스럽게 그 주문을 강의 내용에 어떻게든 반영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기업이 임직원들을 교육·훈련하는 데는 대학이 많이 활용된다. 무슨무슨 최고과정들이다. 그런 교육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반적인 콘텐츠를 학습하고 인맥을 쌓는 기회로도 쓰인다. 각 회사에 특화되고 업무에 필요한 교육·훈련은 사내 연수원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국내에는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연수원이 거의 500개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중견기업들도 교육·훈련에는 열심이어서 모두 합하면 1000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차 포함 큰 기업의 연수원은 교육장 외에도 호텔급 시설을 갖춘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새만금 야영지에서 철수한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원들이 마북캠퍼스에 머물기도 했다. 명칭에 아카데미, 캠퍼스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실제 작은 대학의 캠퍼스 규모인 곳도 있다.

연수원은 연구소와는 달리 회사에 가시적인 성과를 창출해주지는 않는다. 서구 대기업의 연구소에서는 가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연수원은 그럴 일은 없다. 그런데 연구실과 강의실이 같이 있는 대학을 생각해 보면 된다. 연구와 학습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기업 연수원의 역할은 기술이나 전략의 개발이 아닌 유능한 관리자의 양성에 도움을 주는 것이고 미래의 임원, 최고경영자를 양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준비시켜주는 곳이다. 또 기업이 고유의 문화를 조성하겠다면 연수원이 효과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룹'에 입사한 인재들이 '계열사' 사람들을 유의미하게 처음 만나게 되는 곳도 연수원이다. 연수원에 좋은 인재들이 와야 하고 그러려면 합당한 패키지를 갖춘 인사와 리크루트 노력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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