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드라마 팬덤의 '장릉혁 앓이'가 계속되고 있다. 장릉혁은 '축옥: 옥을 찾아서'(이하 '축옥')로 인기를 끌어모으고 있다.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팬덤이 만들어지고 있다. 누가 뭐래도 '만찢남'(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남자)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외모에 섬세한 연기력 덕분이다. 그는 중국에서 '창란결' '영안여몽' 등으로 이미 검증을 마치고 글로벌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축옥'을 중국 플랫폼과 동시 방영했다. 넷플릭스는 2025년부터 중국 드라마 방영권 확보는 물론 동시 방영에 적극 뛰어들었다. 한때 아이치이, 텐센트 비디오 등 이름도 생소한 중국 자체 플랫폼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중드'가 이제 넷플릭스라는 인프라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장릉혁은 그렇게 스타가 되었다. SNS에 드라마 클립이 돌아다니고, 의상과 대사가 밈(meme)이 되어 퍼져나갔다. 스타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발견된다고 했던가. 넷플릭스는 언제든 장릉혁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팬덤의 응원에 힘입어 '축옥'은 넷플릭스 '탑10 시리즈'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물들이 옛날 복식을 입고 나온다고 해서 '고장극(古裝劇)'이라고 불리는 중국 사극 장르 드라마의 재발견이다.
중드를 향한 한국 시청자의 열광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판관 포청천'이 방영되자, 한국 시청자는 중국 사극의 서사와 스케일에 매료됐다. 2000년대 '황제의 딸'은 10대 팬덤을 만들었다. 이런 열풍은 화제를 불러왔지만 사실 그때뿐이었다. 그러나 '랑야방' '보보경심' 등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중드 마니아가 생겨났다.
중드는 해마다 수백 편 넘게 수입되고 있다. 수량만 보면 중국으로 수출되는 한국 드라마의 수십 배에 이른다. 물론 질적으로는 한류 드라마가 중국 시청자에게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 질과 양이 어긋나는 불균형이 이어져 왔다. 이제 그 불균형 구조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구조의 균열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활약도 만만찮다. '축옥'은 인기 웹소설을 원작으로 삼는다. 백정의 딸 번장옥과 신분을 숨기고 사는 몰락한 귀족 사정의 계약 결혼이 진실한 사랑으로 바뀌어 간다. 이야기는 음모와 복수 속에서 이별과 재회를 거듭한다. 번장옥은 천민이지만 가족과 정의를 지키는 능동적이고 입체적인 여성 캐릭터다. 두 사람이 죽음을 불사하며 서로를 지켜내는 이야기는 인간 보편의 감정을 건드린다.
스타, 플랫폼, 스토리텔링의 삼위일체는 중드의 저력을 발휘한다.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예컨대 '판관 포청천'은 이야기의 흡인력이 강했지만, 스타와 지속 가능한 플랫폼은 없었다. 세 가지 장기를 모두 갖춘 '축옥'은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는 '가역성'마저 손에 넣었다. 누구든 언제든 이 이야기를 다시 재생할 수 있게 되었다.
장릉혁에게 빠져든 시청자는 그의 전작을 찾아볼 수도 있다. 비슷한 스타일의 중드로 옮겨갈 수도 있다. 새로 나올 콘텐츠를 기다릴 수도 있다. 생태계의 완성이다. 팬덤은 일회성 소비에서 지속적 향유로 바뀔 준비를 마쳤다.
그렇다고 '중국 드라마가 한류를 위협한다'는 식의 이분법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럴수록 '축옥'이 자극한 한국 시청자의 욕망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한다. 중국 드라마의 부상은 한국 드라마의 패배를 뜻하지 않는다. 글로벌 플랫폼 위에서 한국과 중국 콘텐츠가 경쟁하는 구도는 아시아 드라마라는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다. 한국 드라마가 쌓아온 글로벌 팬덤과 중국 드라마의 스케일이 상호 자극을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한류는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스케일로 중국을 이기려고 해선 안 된다. 한국 드라마가 글로벌 시청자를 사로잡아 온 힘은 현실 감각, 섬세한 인간관, 속도감 있는 전개, 동시대적 감수성을 담아내는 능력이다. 그 고유한 힘을 더욱 키워야 한다. 중국 드라마가 온다. 그것은 우리가 부득불 마주해야 할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