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예견된 청구서

강주헌 기자
2026.06.18 06:10

"교섭 테이블이 무한정 넓어진다면 정작 협상이나 제대로 되겠습니까."

현대차가 회사 안팎으로 다양한 노조 압박에 직면한 모습을 바라본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15일 구내식당 노동자, 공장 경비·보안직원, 판매대리점 카마스터 등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라는 노동당국의 판정이 나왔다. 같은날 원청 정규직인 현대차 노조는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하며 파업 수순을 밟았다.

이날의 풍경은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일이 아니다. 시작은 SK하이닉스였다. 지난해 9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못 박으면서 대기업 노조 사이에 새로운 기준점이 생겼다. 삼성전자 노조가 같은 방식의 요구를 내걸며 올 상반기 파업 직전까지 갔고 현대차 노조가 그 뒤를 잇는 것은 업계에선 예견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이 맞물리면서 더 복잡해졌다. 원청 대기업의 교섭 범위가 어디까지 넓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정규직 노조의 성과급 요구, 하청 노조들과의 교섭 의무, 중노위 재심과 행정소송까지 감당하게 생겼다. 협력업체만 8500곳에 달하는 현대차가 모두 수용하긴 어려운 일이다. 하청 노조가 안전·작업환경 개선 외에도 성과급 요구에 나선다면 더 복잡해진다.

문제는 현대차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포스코·고려아연·SK에코플랜트 등의 중노위 재심 판정이 예정돼 있다. 현대제철·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들도 같은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3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3개월간 하청노조 1137곳(조합원 16만1830명)이 원청 431곳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한 것으로 집계됐다. 비핵심 업무를 외주화해온 제조업체라면 어디든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노사 간 공정한 분배는 중요한 가치다. 하청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방향성에도 이견이 없다. 그러나 성과급은 성과를 냈을 때 주어야 한다는 원칙, 교섭 테이블은 실질적 지배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열려야 한다는 원칙이 무너지고 청구서가 남발되고 있진 않은가. 피지컬 AI(인공지능) 등 미래 먹거리를 두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갈 길이 멀다. 한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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