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없는 정년연장, 누구의 공정인가 [MT시평/김덕호]

김덕호 성균관대 RISE 사업단 교수
2026.06.30 02:00

하반기 정기국회에서 정년연장 입법이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관련 기사마다 논쟁이 뜨겁다. 한쪽에선 "일할 수 있는데 왜 내보내는가?"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그 자리가 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라고 되묻는다. 일할 권리와 일할 기회가 충돌한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을 외치지만 갈등은 오히려 더 거세지고 있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서로 다른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한 조직 안에서 30년을 근속한 고령자에게 정년연장은 노후를 지키는 안전장치다. 반면 취업 문을 두드리는 청년에겐 진입을 막는 장벽이다.

청년의 불안은 정년연장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느끼는 위기의 본질은 경쟁이 치열하다는 데 있지 않다. 아무리 달려도 앞으로 나아갈 경로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청년들이 문제 삼는 것은 기회의 배분 방식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정 논쟁은 유독 격렬하다. 그 밑바닥에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능력과 노력이 비슷해도 어디에 첫발을 딛느냐에 따라 삶의 궤도가 달라진다. 한번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 진입하면 시간이 흘러도 임금과 근로조건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할 경로도 찾기 어렵다. 같은 노력이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질 때 공정은 흔들린다.

더욱이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 성취를 좌우하고, 그 격차가 입시와 채용의 결과로 굳어지면 사회적 이동의 사다리 자체를 의심하게 된다. 누군가는 오랜 시간 시험을 준비하고 실패를 견딜 수 있지만, 누군가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선택을 강요받는다.

성장이 둔화할수록 갈등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성장이 빠를 때는 늘어나는 일자리가 구조의 문제를 가려주지만, 성장이 멈추면 제한된 기회를 둘러싼 갈등이 커진다.

그 갈등이 가장 선명한 곳이 임금과 고용이다. 연공제와 고용 경직성은 내부노동시장 정규직에겐 공정한 보상과 보호로 받아들여지지만, 주변부 노동자에겐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 격차이자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보인다.

초고령화시대 계속고용 정책은 필요하다. 문제는 정년연장을 감당할 노동시장 구조가 갖춰져 있는가다. 55~64세 고용률은 70%를 넘어섰지만 청년 고용률은 24개월 연속 하락해 43.7%까지 떨어졌다. 연공제와 고용 경직성이 그대로인 채 정년이 늘어나면 노동시장 입구에 선 청년들의 기다림은 더 길어진다. 게다가 정년연장의 효과가 내부노동시장에 집중될 경우 이중구조는 더욱 굳어질 수 있다.

그래서 정년연장 논의는 숫자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여야 한다. 노동시장의 구조개혁 없는 정년연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독일, 일본 등 주요국도 노동시장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년 숫자만 올리지는 않았다. 어렵더라도 임금체계 개편과 고용의 유연안정성, 직무 조정과 전직 지원, 연금개혁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미래세대에게 러닝머신 위에서 끝없이 달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길이 보여야 노력도 의미를 갖는다. 공정은 출구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입구를 넓히는 데서 시작된다.

김덕호 성균관대 RISE사업단 교수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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