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로 인한 정부 전산망 마비로 29일부터 일선 민원 및 정부의 행정 업무 상당수가 멈추면서 곳곳에서 적잖은 혼란이 벌어졌다. 정부가 온라인 업무시스템 순차 복구에 속도를 내면서 정부시스템이 속속 정상화하고 있지만 완전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현재 화재로 중단됐던 국정자원 본원의 647개 대국민·행정 업무시스템 중 73개가 복구됐다. 정부는 화재가 발생한 5층 전산실에서 관리하던 업무시스템 96개를 제외하고, 선제적으로 가동을 멈췄던 2~4층 전산실의 551개 시스템을 우선순위를 고려해 순차 복구하고 있다. 다만 전소로 직접 피해를 입은 96개 시스템은 국정자원 대구센터 민관협력형 클라우드 존으로 이전·재설치하기로 해 가동까지 4주 이상 소요될 전망이다.
화재 발생 후 첫 업무가 시작된 이날 일선 구청과 읍면동 사무소 등 민원 현장에선 평소와 달리 긴장감이 감돌았다. 정부24 등 온라인 민원처리시스템 복구가 이뤄지면서 우려했던 민원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일부 시민들은 '황당한 사고'라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업무 시작 시간인 이날 오전 9시 서울 은평구청에선 민원도우미들이 가족관계증명서 발급 등을 위해 찾아온 민원인들에게 처리 불가능 민원을 안내하며 응대했다. 은평구 주민 전은희씨(68)는 "원래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데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려고 시간을 일부러 냈다"며 "온라인 발급에 미숙하기도 해서 직접 도움을 받으려 한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민 유모씨(62)는 "우리도 컴퓨터를 하다가 불안해서 USB에 자료를 백업하는데 정부 시설이 그렇게 불에 타서 온 국가가 마비되는 상황이 참 어이없다"며 "세금을 그런 중요 시설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에 써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씨(59)는 "주말에 비대면으로 대출을 받지 못해 은행에 갔는데 구청에서 필요한 서류들을 가져오라고 했다"며 "평소 10분 이내면 끝낼 일을 직접 돌아다니며 서류를 발급받으니 불편하다"라고 했다. 김씨는 "불이 났다고 이렇게 되는 게 참 황당하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KTX 승차표 창구에도 긴 줄이 늘어섰다. 정부24 복구가 완료되지 않은 이날 아침 일찍 임산부·장애인 등 할인 대상자 수십명이 증빙 서류를 들고 현장으로 몰려서다. 창구 업무도 지연돼 대기가 두시간 이상 늘어지는 등 불편이 발생했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역 창구에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승차권 할인을 받으려는 사람들 20여명이 모여 긴 줄이 이어졌다. 창구에서 중증 장애인 인증 등록을 마친 송모씨(64)는 "온라인으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시도했는데 접속이 안 돼 답답했다"며 "추석을 앞두고 아산행 티켓을 사러 왔는데 50% 할인은 큰 금액이라 어쩔 수 없이 직접 찾았다"고 말했다.
전국 화장시설 예약 사이트 마비로 화장 일정에 차질을 빚은 유족들도 큰 불편을 겪었다. 통합 플랫폼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에 접속해 24시간 예약할 수 있었지만 전산망 마비로 개별 전화나 방문 예약만 가능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 1층 접수실 직원들은 팩스로 도착한 화장 예약 서류를 확인하느라 분주했다. 창구 곳곳에서 "이OO님 팩스 보내신 것 맞죠?"라며 확인 절차가 이어졌다. 전화로 접수 절차 상담을 진행하고 팩스로 서류를 주고받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유족대기실에서 만난 장례지도사 김모씨는 "예약 시스템이 80년대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갔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김씨는 "화재 발생 이튿날인 27일 오전 6시쯤 전화를 시도했는데 화장장 예약은 오전 10시에야 완료됐다"며 "서류 검수 절차도 온라인으로 할 때보다 단계가 늘면서 접수실 업무가 곱절로 늘었다"고 했다.
지난 27일 모친상을 당한 상주 이모씨(53)는 "황망한 마음으로 장례식장에 향해 뉴스를 접하지 못했는데 장례지도사로부터 화장 예약이 막혔다는 이야기를 듣고 황당했다"며 "코로나19도 아니고 의료대란 문제도 아닌데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장사를 못 치르나 싶어 불안감이 컸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화장을 마쳤어도 지역민 확인 절차를 거치지 못해 유골 안치 절차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서울추모공원은 오전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대응하던 접수실 운영 시간을 임시로 늘리고 24시간 대응 중이다. 하루 60건가량 받는 화장 예약이 전화와 팩스로 몰리며 통화량이 폭증했다. 서울추모공원 관계자는 "오전에 정부 주민등록등본 조회가 가능해져 지역민 입증 절차 혼란은 해결됐다"고 밝혔다.
일선 시중은행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비대면 서비스가 대부분 정상 복구됐지만 비대면 주민등록증 진위 확인 여부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은행에선 사업자대출에 필요한 지방세납부내역 등이 불가능해 관련 서비스를 비대면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비대면 부동산 신규 신청이나 전세대출 연장, 보금자리론 전입사실 확인 등 정부24의 데이터를 활용한 서비스도 전면 중단됐다. 토지나 건축물대장 등이 모두 정부24에 의존하고 있어서다. 이날 오전 9시30분 이후 정부24가 복구되면서 지금은 비대면 업무가 정상화됐다.
국민 보건의료 데이터 관리에 대한 불안감도 확산하고 있다. 약물 알레르기 관련 정보를 비롯해 국정자원으로 이관·관리 중인 휴·폐업 의료기관 전자진료기록 등 국민 의료데이터가 이번 사태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다. 특히 약물 처방 관련 알레르기 정보를 알려주는 K-CDS가 장애를 겪으면서 현장에서도 대비 태세를 강화하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K-CDS 작동이 잘 안되고 있어 의료 현장에서 (환자 대상으로) 질문 및 확인을 강화하면서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