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디(구로디지털단지)·가디(가산디지털단지)에만 가면 이유를 모르겠지만 마음이 조금 우울해진다."
지난 10월 2일 서울시청 오전 간부회의. 온라인 커뮤니티의 짧은 글 하나가 이날 회의의 주요 의제로 올라 왔다. 2030 세대 젊은 직장인들의 날감정을 그대로 담은 문장이었다. 구디·가디 일대의 녹지 부족을 지적한 온라인 게시글을 주제로 이날 회의는 전례없는 토론으로 달아올랐다고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구로구 항동에 수목원이 있지만 일반 직장인들이 이용하기 어려워 생활권 녹지로서는 불충분하다"며 "녹지 확충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니즈(수요)가 높아진 만큼 세월의 흐름과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읽고 G밸리의 공간 구조에 반영하라"고 도시공간본부에 지시했다.
그로부터 두 달 남짓 후인 지난 11일 오후 G밸리 국가산업단지를 찾은 오 시장은 "준공업지역 제도개선을 반영한 첫 민간개발 사례인 교학사 부지를 개발해 녹지여가 거점 공간을 충분히 갖춘 미래형 경제·생활 중심지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민 누군가가 온라인에 쓴 글이 G밸리(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의 지도를 바꾸는 트리거(방아쇠)가 된 것이다.
14일 서울시에 따르면, 매일 아침 오 시장이 주재하는 시 간부회의가 이전과는 적잖이 달라졌다. 통상 레거시 미디어(전통적인 신문·방송)가 설정한 주요 이슈과 의제를 중심으로 시정 전반을 점검했으나 지금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 디지털 공론장의 여론이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변화가 시작된 건 지난 7월부터다. 오 시장은 당시 "시정에 역동성을 더하려면 신선한 시각과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며 간부회의가 단순히 언론 보도 내용을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정형화된 형식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한다. MZ로 상징되는 젊은 세대가 즐겨 소통하는 디지털 공론장의 시민 일상 의제를 회의 테이블에 올려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보자는 제안이었다.
서울시는 이후 뉴미디어에서 이슈를 발굴해 매주 1회씩 간부회의에 보고하고 토론 주제로 삼았다. 조회 수가 급증한 유튜브 콘텐츠와 실시간 트렌드에 오른 소셜 미디어 게시글은 물론 시민 생활과 관련한 디지털 공간의 의제들이 성역없이 간부회의에서 다뤄졌다. 회의에 활력이 더해지자 지난 8월부터는 뉴미디어 이슈 보고를 매일 1회로 늘려 새로운 회의 방식과 체계가 자리를 잡았다.
'G밸리 녹지여가 산업공간 재편' 계획은 서울시가 온라인 이슈를 포착해 정책으로 응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구디·가디 일대의 녹지 부족 문제는 그간 청년층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온라인 상에는 "공원이 없어 삭막한 구디·가디는 직장인들만 고립된 고인 웅덩이 같은 도시"라는 자조적인 글이 잇따랐다.
오 시장은 처음 G밸리 문제를 보고받은 후 "이런 글이 온라인에서 회자가 될 정도의 단계까지 왔으면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할 문제"라며 "현상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대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지난 11일 G밸리 현장 점검에선 △가로수와 띠녹지를 확충한 '가로숲' 조성 △활용도 낮은 공개공지의 '공유정원' 전환 △가산디지털단지역 '펀스테이션' 조성 등 도시공간 개편 구상을 직접 발표했다.
지난 9월 서울시가 내놓은 '서울형 이공계 인재 양성 전략(이공계 전성시대)'도 마찬가지다.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한 온라인상의 우려 섞인 목소리를 간부회의 논의 테이블에 올려 정책 대안을 마련한 또 다른 사례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제된 시각으로 의제를 설정하는 레거시 미디어가 미처 비추지 못한 사각지대를 뉴미디어 의제로 보완해 시정의 역동성을 더하자는 게 오 시장의 주문이었다"며 "일종의 '확장된 레이더'가 G밸리 도시 공간을 바꾸는 정책으로 구체화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