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 한 달째에 접어들면서 '물가안정'과 '물가착시'가 동시에 발생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물가를 누르고 있지만 덩달아 수요도 자극하면서 역효과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고가격제 시행의 역설이다.
1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2%다. 중동전쟁의 영향이 고스란히 반영됐음에도 지난 2월(2.0%)보다 물가가 크게 오르지 않았다. 농산물 가격이 내려간 효과와 최고가격제 시행 효과가 맞물린 결과다.
석유류는 지난달에 물가를 0.39%포인트 끌어올렸는데 중동전쟁 이후 치솟은 기름값을 감안하면 선방한 수준이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 영향이 컸던 것으로 분석한다. 판매가격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가격인상을 억제했기 때문이다. 지표상으로만 보면 최고가격제는 물가상승의 방파제 역할에 성공했다.
실제로 석유류는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물가지표 중 하나다. 소비자물가는 458개 대표 품목별로 가중치를 설정해 집계한다. 휘발유 가중치는 24.1이다. 휘발유 가중치(총합=1000)는 △전세(54.2) △월세(44.9) △휴대전화료(29.8)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경유(16.3) 가중치 역시 7번째로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8%에서 2.7%로 대폭 높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석유수입 의존도가 유독 높은 한국 입장에선 중동전쟁이 물가 상방압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2.2%로 전망한 한국은행도 전망치를 2%대 중후반까지 끌어올렸다.
중동전쟁 장기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던 정부는 이런 우려 등을 담아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최고가격제가 물가를 낮추는 게 아니라 물가인상을 '지연'한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당장의 물가급등을 막는 안전판 역할을 기대했다.
안전판 역할을 비교적 충실히 수행했지만 예상치 못한 역효과도 나타났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2주 만에 휘발유 판매량은 24.7% 증가했다. 경유 역시 같은 기간 16.3% 더 팔렸다.
정부가 '에너지 위기'를 강조하면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차량5부제와 2부제를 연달아 시행한 것과 대조적이다.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가격제는 물가안정이라는 취지와 달리 오히려 수요를 자극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며 "위기상황에서는 소비가 줄어야 하는데 오히려 늘어나는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