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 시안을 마련했지만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해소할 제도적 장치 없이는 학교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 시비를 우려하지 않고 사회적 쟁점을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25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교위는 지난 23일 부산에서 열린 학교시민교육 현장토론회에서 '학교시민교육 국가 기본원칙' 시안을 공개하고 국민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기본원칙안의 핵심은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 옳고 그름이 명확한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게 가르치되 정치·사회적으로 견해가 엇갈리는 사안은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학생들의 토론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다. 혐오와 차별을 배격하고 학생들이 타인의 권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도 담겼다.
국교위가 이 같은 원칙을 마련한 것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혐오 표현과 차별이 교실까지 무분별하게 유입되는 현실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혐오와 차별은 교육을 통해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지만 교사들이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을 우려해 관련 수업 자체를 기피하는 사례가 반복되자 최소한의 교육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국교위의 판단이다.
다만 교육계에서는 원칙안이 학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치적 중립성 시비로부터 교사를 보호할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학교에서는 혐오 표현이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과정에서도 정치적 편향 교육이라는 민원이 제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교육기본법 제6조는 교육이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는데,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 조항을 근거로 민원을 넣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이달 2~6일 전국 초·중·고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혐오·역사 왜곡 표현 인식 설문조사'에서도 민원에 대한 우려가 확인됐다. 혐오 표현 관련 사안이 발생했을 때 학생을 지도하기 어려운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69.9%)이었다. 이어 '학부모 민원이나 외부 공격 우려'가 60.1%로 뒤를 이었다.
교원단체는 가치 중립적인 교육을 했음에도 정치적 중립성 위반을 이유로 제기되는 악성 민원에는 교육당국이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맹 관계자는 "국교위의 기본원칙이 법적 구속력이 없는 상황에서 그대로 이행하면 학부모 민원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교사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교육한 경우 제기되는 악성 민원에 대해서는 교육감이 공무방해 혐의로 고발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사의 학교 밖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교사의 정치활동이 과도하게 제한되는 현실이 학교 안에서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까지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정치기본권이 없는 상황이 수십 년 이어지면서 '교사는 어떤 정치적 사안도 언급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굳어졌다"며 "5·18 민주화운동처럼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조차 정치적 편향으로 신고당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교사는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학생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학교 밖에서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이 보장돼야 교사를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틀에만 가두는 인식도 바뀌고 사회적 쟁점을 교육하는 것 자체를 정치적 편향으로 보는 문제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