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종사자입장에서 (김영란법 처리) 안 한다고 몰아붙일 땐 언제고 오늘은 왜 이것을 하느냐고…"(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 최초 제안자의 이름을 딴 이른바 김영란법이 숱한 논란을 뿌리며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 제출이 아니라) 입법예고로부터 929일이 걸린 그 과정은 법안심사의 주인공인 정치권뿐 아니라 이들을 감시·비판하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도 무거운 화두를 던졌다.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어야 했는가. 욕을 먹더라도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것이 옳았을까. 그 과정에서 언론은 중심을 잡았는가.
◇'원안통과' 프레임에 걸린 국회 "여론이 원하니까"
김영란법 논란은 '프레임'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정치권에서 프레임은 자신에게 유리한 생각의 틀로 상대방을 논리적·정치적으로 옭아매는 전략의 핵심수단이다. 2007년 7월2일, 버락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CNN TV토론에서 진행자의 질문을 정면 거부했다.
"영어가 미국의 공식언어라야 한다고 믿는다면 손을 드세요."(진행자 울프 블리처)
블리처는 미국내 히스패닉 등 '비백인'인구가 늘고 이들이 영어에 익숙지 않은 상황을 파고들어 하나의 프레임을 만들었다. 후보들로선 예스(yes)라고 해도 문제, 노(no)라고 해도 문제였다.
오바마 후보는 달랐다. '미국이 분열돼선 안된다'는 자신의 프레임으로 맞섰다.
"우리(미국)를 분열시킬 의도의 질문이다. 아시다시피 당신이 옳다. 쟁점은 미래 이민자 세대가 영어를 배우려 하느냐 여부가 아니다.(중략) 이런 질문으로 혼란을 겪을 때 미국에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여러 정치교과서에서 소개하는 프레임 걸기(진행자)와 프레임 빠져나오기(오바마)의 사례다. 국회의 김영란법 처리과정과 논란이야말로 '원안통과'라는 강력한 프레임에 걸린 정치권이 여기서 빠져나오기는커녕 프레임 확대재생산에 동조한 결과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김영란법은 옳고 한 글자도 수정하지 않고 원안통과시켜야 한다는 프레임은 너무 강력했다. 법안 탄생의 배경 등을 종합하면 이런 여론은 그럴 만했다. '낙인찍기'라는 고전적인 캠페인 전술도 결합했다. "국회가 시간을 끌며 법안에 소극적", "위헌 가능성 제기는 핑계"라는 명제가 그랬다.
프레임에 걸리고, 낙인이 두려운 국회의원들은 옴쭉달싹하지 못했다. 정치인에게 표를 줘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게 국민(유권자)인데 그 국민이 이 프레임을 완벽히 신뢰하고 있었다. "원안통과"를 외친 정치인도, "이대론 안되지만 여론이 원하지 않느냐"라며 고민에 빠졌던 다른 정치인도 이 프레임에 갇힌 건 마찬가지다.
당시 '법안처리를 막고 있다'고 지목된 한 여당 의원은 "지역주민의 항의전화는 물론, 내 자녀가 학교에서 '너희 아버지는 김영란법에 왜 반대하느냐'란 소리를 들었다더라"고 토로했다. 어지간한 강단이 없으면 이런 상황에서 소신껏 발언하기 어려웠다.
◇"원안이냐 아니냐의 문제 아니다" 용기있게 말했다면
지난해 말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김영란법은 위헌 소지 등 문제가 많은 법안이며 국회가 이런 법안을 졸속 처리하려 한다는 새로운 프레임이 등장한 것이다. 김영란법을 다루는 신문과 방송의 논조가 그렇게 달라졌다. 이는 법안 논의 중 부정청탁, 금품수수 금지 대상에 언론사 직원을 포함한 뒤부터다.
그렇다고 여론 지지를 받는 기존 프레임이 소멸한 것도 아니어서 상반된 두 개의 프레임이 공존했다. 법안을 2월 임시국회에 통과시키려 하면 "부실 입법", 통과를 미루기라도 하면 "개혁에 저항"이라는 비난을 듣게 돼 있었다. 김영란법은 이처럼 모순되는 프레임이 덧씌워진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국제사회에선 긍정평가도 있다. 6일 중국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진핑 국가주석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회의에서 관계자와 한국 반부패법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국에서는 100만원(약 5700위안)만 받아도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했다. 100만원 기준은 바로 김영란법에 담긴 내용인데 부패척결을 강조하는 시 주석이 김영란법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하지만 국내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지난해 원안통과를 촉구했던 대한변호사협회는 위헌소지가 많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물론 워치독(감시견)이란 언론 본연의 기능이 위축되면 언론을 포함해 얻는 편익보다 사회적 비용이 클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단지 언론사가 포함됐다고 해서 없던 위헌소지가 갑자기 생겼는지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보다 원안부터 위헌소지가 상당했음에도 이를 제대로 짚지 않은 것이 혼란을 일으켰다고 봐야 한다.
국회 분위기도 어지럽다. 새누리당은 경제 타격이 우려된다며 접대비 기준 조정 등 시행령 반영을 공언했다. 공직부패 척결법으로 박수를 받으며 등장한 법은 어느새 언론자유 침해법, 서민경제 박해법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시작도 전에 법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밝혔지만 이상민 법사위원장 같은 이는 "(문제가 많은 법안을 통과시켜)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혼란상에 언론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들여다보지 않고 '원안통과'라는 프레임에 매달리더니 어느새 입장을 바꿨다는 볼멘소리가 국회에서 나온다. 김영란법에 언론을 포함시킨게 언론을 향한 국회의 '반격'이란 해석까지 있다. 아주 터무니없는 이야긴 아닐 것이다. "기자들도 한 번 당해보라"는 취지로 농담 반, 진담 반 말한 의원이 있긴 했다.
하지만 언론이 아무리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도 결국 칼자루를 쥔 쪽은 국회라는 게 드러났다. 김영란법에 표결하고 의사봉을 두드린 건 국회다. 따라서 김영란법에 문제가 있다면 보완하고 정교하게 만드는 것 역시 국회가 책임감과 용기를 보일 의무가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김영란법을 원안대로 통과시킬 건가"라고 물었을 때 이렇게 답할 정치인은 없었을까. 2007년의 오바마처럼 말이다.
"어떤 생각인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원안 여부는 법을 심사하는 순간부터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잘 아시지 않느냐? 과연 현실적인 법이냐, 만드나 마나 한 법을 제정하느냐가 문제다. 원안이냐 아니냐로 우리가 혼란을 겪을 때 그 피해는 국민들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