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300][우리가보는세상]

"정말 이 법안이 전직 대법관 출신의 권익위원장이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제출한 법안인지 의문이 들 만큼 이 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2015년 3월3일 오후 역사적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법안 제안에 나선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 법안을 최초 제안한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을 비판한 것이다.
동료의원들에게 상정 법안을 통과시켜줄 것을 요청하기 위해 나온 자리에서 이 법안의 최초 설계자에 화살을 겨눈다는 것은 웬만해선 상상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김 의원은 김영란법의 소관 상임위였던 정무위워회 야당 간사로 활동하면서 이 법의 출생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전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언론은 뒤늦게 벌떼처럼 법안의 모호성, 위헌, 과잉입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이 당초 제안했던 입법예고안이나 권익위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훨씬 더 많은 논란거리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과 여론은 법안의 세부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거나 파악하지 않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취지만을 강조했다.
법안을 심의하는 국회로서는 법안을 빨리 처리하자나 부작용이 불을 보듯 하고, 처리를 미루다간 반개혁 세력으로 몰렸다.우여곡절 끝에 여야 합의 수정안으로 본회의를 통과시켰지만 역시나 부실입법 논란에 휘말렸다.
여야가 합의한 시한에 쫓기면서 법사위 논의 시간이 부족하긴 했지만 정무위 최초 논의부터 약 8개월 동안 법안을 놓고 씨름했던 국회의원들로선 억울할만하다.
특히 얄미운 건 언론일 것이다. 얼마전까지 법안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압박하더니 이제는 경제 파탄, 위헌, 과잉입법 등 혼갖 수식어를 갖다 붙여 비판한다.
지난해 7월 자신들의 신문 1면 톱기사에서 '"김영란법 위헌 소지 없다"'고 대문짝만하게 썼던 한 중앙일간지의 4일자 1면 톱 기사는 '위헌소지 알고도 그냥가자는 국회'였다. 정도는 다르지만 다른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다. 조속 처리를 촉구했던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제는 부실 입법을 비판한다.
욕은 욕대로 얻어 먹고 수정해놨지만 법안의 이름은 여전히 '김영란법'이다. 억울했든지 김 의원은 전날 법안 제안에서 "이 법의 내용은 이제 우리 국회의원들 모두가 함께 만든 법입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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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김영란법을 심사했던 국회의원들의 고충을 적는 것은 그들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각종 법안들이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데 이처럼 왜곡된 논의 구조를 그대로 둬선 피해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아는 김영란법은 이제 김영란법이 아니다. 국회를 통과한 모든 법안은 국회의원, 또 이들을 지배하는 언론과 우리 국민 모두가 만드는 것이다. 법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고쳐지는지, 철저히 감시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만든 법안들이 언제 우리 발목을 잡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