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법 취지를 벗어난 정부 시행령에 대한 수정요구권을 부여하는 국회법 개정안 논란이
입법부와 행정부, 청와대와 새누리당, 새누리당내 계파, 여당과 야당 간 물러서기 힘든 격돌로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까지 시사하며 일전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이자 새누리당은 우선 당청 갈등 수습에 나서는 한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없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야당은 개정안을 토대로 시행령 대수술에 나서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한편에선 국회를 파국으로 몰고가서는 안된다는 신중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정부에 송부되면, 대통령은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이의서를 붙여 국회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를 해야 한다. 법안에 대한 논란으로 송부에 1~2주가 소요된다고 가정해도 늦어도 이달말까지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
◇시나리오1.대통령 법안 수용
여야가 '시행령 수정요구'의 강제성 여부에 대해 박 대통령이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합의점을 제시할 경우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막고 입법부와 행정부, 당청 간 충돌을 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협상 당사자인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담판을 벌여 법안 내용에 강제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유 원내대표는 법안 내용이 "강제성이 없다"고 일관되게 주장했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책임논란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으로서도 개정안의 정부 이송 전 여당이 협상력을 발휘해 야당을 설득, 재협의에 나설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국회에 '강제성 여부'에 대한 입장정리를 요청한 것도 이같은 포석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면 정부가 수용하는게 당연하다는 입장에 따라 이미 법 취지에 어긋한 시행령 수정 요구 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헌법학자 등을 통해 법안 내용의 강제성 여부를 판단하고 이를 통해 야당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김무성 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2일 지도부 책임론 등의 내부 갈등을 덮고 '시행령 수정'의 강제성 여부로 전선을 이동시키는 것도 이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으로 보인다.
이종걸 원내대표 역시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을 국회가 잘 살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혀 여야 간 일정 부분 타협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시나리오2. 대통령 거부권 행사→부결
재협상이 실패로 돌아가 개정안 원안이 정부로 넘어올 경우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면 해당 법안은 국회로 돌아가 재의결 절차를 밟아야 한다.
본회의가 열려 표결이 이뤄질 경우 새누리당은 당초 투표와는 달리 부결로 이끌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 대표가 이미 "당과 대통령의 뜻은 다르지 않다"고 못을 박았다. 총선에 대비해 당청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사태를 막고 전선을 여야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결될 경우 야당의 반발로 정국이 냉각되며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등 향후 국정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설사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여당은 끝까지 문제를 풀어가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맞다"며 "아무리 입법부와 행정부 간 구도로 끌고간다고 해도 결국에는 당청 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시나리오3. 대통령 거부권 행사→재의결
재적의원(298명) 과반(150명)이 출석해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재의결이 된다. 지난달 28일 본회의 당시 표결 결과만 놓고 보면 여야 의원 211명이 찬성, 재의결을 위한 찬성표수는 충분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에 막대한 타격이 가해지고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정치적 결별 수순을 밟게 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정국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피하고 싶은 최악의 국면이 펼쳐지게 되는 셈이다.
새누리당으로도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클 것으로 보여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같은 일을 감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청와대 내에서도 재의결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개정안을 재의결하지 않고 여야가 제3안의 안을 마련해 통과시키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야당이 여당의 협상 요구에 응할지가 관건이다.
◇시나리오4. 대통령 거부권 행사 → 본회의 미개최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야당 입장에서는 향후 모든 국회일정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가장 높아 보인다.
국회법 재의결을 위해 본회의를 개최할 경우, 당초 표결과 달리 법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본회의 자체가 열리지 못할 수도 있고 덩달아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표결에도 불똥이 튈수 있다.
여당 입장에서도 본회의 개최에 적극적이지 않을수도 있다. 본회의를 열고 국회법을 표결하게 되면 찬성-반대로 갈린 당내 갈등이 회복불가능 상태로 악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행 우리헌법에는 대통령이 법안 이송 이후 15일 이내에 거부권 행사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을뿐 국회로 돌아온 법안의 재의결 기간을 정하고 있지는 않다. 국회법은 재의결되지도, 부결되지도 않은 채 어정쩡하게 표류하며 사실상 무력화하게 된다.
현재로선 야당은 대통령거부권 행사 결정시까지 황교안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표결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국회법 개정안 처리는 물론, 황 총리후보자 국회표결과 이후 모든 의사일정까지 올 스톱될 것으로 우려된다.
◇'유승민 사퇴?'…가능성은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그 순간 재의결이나 부결 여부와 상관없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협상 실패와 당청 등의 갈등을 유발한 데 따른 책임론이 불거진 상태다. 친박계는 이날 국회에서 국가경쟁력강화 포럼을 열고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주장하고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게 되면 새누리당의 당내 갈등이 치유 불가능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전에 미리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친박계 새누리당 의원은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것이 정국을 푸는 길"이라며 "이렇게 되면 '강제성' 여부에 대한 협상에서도 야당과 청와대를 설득하기도 더 쉽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형상으로는 유 원내대표가 사퇴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당 최고위원회와 의총을 거쳐 추인받은 사항을 원내대표 한 사람이 책임진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고 국회법 개정안 합의사항이 사퇴를 요구할 만큼 중대한 사안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중도층으로부터 유 원내대표의 중도개혁적 성향이 큰 지지를 받았던 만큼 총선에도 만만찮은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현실론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