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 전인 2006년 7월 23일, 당시 대서(大暑)였던 탓에 극심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경찰들도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쫓고 있던 때 외국인 남성이 다급한 목소리로 112에 전화를 걸어왔다.
해당 남성은 프랑스 국적의 장 루이 쿠르조(당시 40세)였다. 오전 11시쯤 경찰에 연락한 그는 당황한 목소리로 "우리 집 냉장고에 어린아이 시체 2구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냉장고 내부 모습을 보고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는 태반과 탯줄을 몸에 두른, 갓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백인 남아 시체 2구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시체 2구는 각각 냉동실 네 번째 칸과 다섯 번째 칸에 얼음덩어리를 뒤집어쓴 채 들어있었다.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범행에 경찰은 곧바로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사건 조사에 나섰다.
경찰은 숨진 아기들이 몸무게 3㎏ 남짓의 신생아인 것으로 파악했다. 아기들은 출생 직후 살해당한 뒤 냉동실 안에 넣어진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가장 먼저 신고자인 장 루이 쿠르조를 범인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장 루이 쿠르조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범인이라면 직접 신고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며 "프랑스에 휴가를 다녀왔다가 택배로 온 고등어를 냉장고에 넣으려다가 시신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경찰도 그에게서 별다른 범죄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다음 유력 용의자로 분류된 사람은 장 루이 쿠르조 집에서 일하던 필리핀 국적의 가정부 A씨(당시 49세)였다. A씨는 "쿠르조가 없을 때 집에 몇 번 방문한 적은 있으나 범행과는 관련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경찰은 A씨에게서 임신 이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

당초 경찰은 장 루이 쿠르조의 아내 베로니크 쿠르조(당시 39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 그녀가 2003년 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던 병력을 확인, 신생아를 출산한 뒤 살해했을 것이라 판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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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결국 과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경찰은 쿠르조 부부와 숨진 아기들의 DNA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이때쯤 자동차 기술자로 한국에 파견돼 있었던 장 루이 쿠르조는 프랑스로 출국했다.
국과수는 사건 발생 5일 후인 2006년 7월 28일에 "사망한 두 신생아의 친부와 친모가 쿠르조 부부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찰에 DNA 분석 결과를 전달했다.
이에 경찰은 베로니크가 2003년 자궁을 적출하기 전 출산한 뒤 아이들을 살해한 것으로 판단, 수사 자료와 DNA 검사 결과 등을 쿠르조 부부가 거주하던 프랑스 오를레앙 지역 경찰과 검찰에 넘겼다.

프랑스에서도 쿠르조 부부 사건은 큰 화제가 됐다. 수사에 나선 오를레앙 경찰은 쿠르조 부부와 숨진 아기들의 DNA 비교 분석을 진행, 한국 국과수와 같은 결론을 받았다.
현지 언론과 인터뷰까지 진행하며 혐의를 부인하던 베로니크는 그제야 범행을 실토했다. 그는 "임신거부증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아기를 갖게 돼 우울증에 빠졌다"며 "임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남편 몰래 출산 후 범행했다"고 털어놨다.
조사 결과, 장 루이 쿠르조는 아내의 범행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뒤늦게 진실을 알고 충격받은 남편은 아이들 시신을 프랑스로 보내달라고 한국 경찰에 요청했다.
두 아이가 프랑스에 도착하자 장 루이 쿠르조는 그들을 각각 알렉 상드르 쿠르조, 토마 쿠르조라는 이름으로 친생자 등록한 뒤 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렀다.
영아 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베로니크 쿠르조는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후 베로니크는 "이번 사건 관련해 언론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수감 3년7개월 만인 2010년 5월 가석방 됐다.
아내의 범행이 드러났음에도 장 루이 쿠르조는 베로니크와 결별하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가석방 될 무렵에 '그녀를 버릴 수가 없었다'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