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랑, 첫 만남, 첫 월급, 첫 아기. 처음이 주는 의미는 언제나 각별하다. 입법을 통해 정책을 만들고 국민들의 삶을 보살피는 국회나 국회의원들에겐 '1호 법안'이 그렇다. 개원 1주일을 맞은 20대 국회도 '1호 법안' 알리기가 한창이다.
새누리당은 1호 법안으로 청년기본법을 발의했다. 국무총리실에 청년위원회를 설치해 청년 관련 업무를 총괄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청년 몫으로 비례대표가 된 신보라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새누리당이 앞으로 고달픈 청년들의 삶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차원의 '1호 법안'이라는 이름을 붙이자는 않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 보육대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법안들을 '긴급 현안 3대 법안'으로 지정했다. 국민의당은 △공정성장과 질적성장 △일자리 개선과 비정규직 대책 △불평등 및 격차 해소 △중부담·중복지 △인권증진과 기득권 카르텔 해체 △튼튼한 안보 위에 평화기반 강화 등을 20대 국회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할 6가지 기본방향으로 제시했다.
의원 개인 차원의 1호 법안 홍보도 치열하다 . 국민의당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은 매년 논란이 되고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민주화운동 공식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자신의 1호 법안으로 제출했다.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은 국회의원들의 불체포특권 남용을 막는 국회법 개정안을 냈다. 노동계 출신의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여권이 추진해온 노동개혁 4법(근로기준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파견법) 중 근로기준법과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다시 대표발의했다. 모두 자신의 색깔과 정치적 신념이 드러나는 법안들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1호 법안'의 백미는 의안번호 '2000001'이 찍히는 20대 국회 전체의 1호 법안이다. 이번에도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보좌진들이 법안 접수 사무실 앞에서 만 3일을 철야로 버틴 끝에 초선인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이 첫 발의자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박 의원이 낸 법안의 내용은 실망스럽다. '통일경제파주특별자치시의 설치 및 파주평화경제특별구역의 조성·운영과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으로 경기도 파주에 평화경제특별구역을 설치하는 내용이다. 물론 박 의원의 지역구는 파주(을)이다. 접경 지역에 경제특구를 설치해 남북간 공생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취지를 감안하더라도 '지역구 법안'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앞서 19대 국회 때도 통일경제특구 지정을 요청하는 법안이 4건 발의됐고, 대표발의한 의원들은 모두 자신의 지역구 또는 관련 지역을 특구로 명시했다.
여소야대, 3당 체제로 시작하는 20대 국회의 책무는 어느때보다 무겁다. 하루가 다르게 터져 나오는 안전 사고들, 비리 사건 등 여러 사회 문제들과 저출산, 일자리 부족, 양극화 등 구조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여야 대치가 극심했던 탓에 이번엔 국회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정말로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그만 20대 국회의 1호 법안 자리를 '지역구 법안'이 차지한 것이다.
물론 지역구 유권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생사여탈권을 지닌 지역구를 최우선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우리 헌법이나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국가와 국민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적 아젠다와 정책들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도의원, 시의원과 별도로 국회의원을 두는 의미가 없다. 적어도 20대 국회의 얼굴인 1호 법안을 발의할 때는 이런 고민을 더 했었어야 했다.
물론 1호 법안 하나로 20대 국회의 운명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호 법안이 '지역구 법안'으로 채워진 현실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라면 20대 국회도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다.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과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